나이 들었다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고?

입력 2019.11.09 03:00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지난번 칼럼에서 어윈 쇼 원작의 1970년대 TV 시리즈 '야망의 계절'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문 나온 주말, 문자 메시지를 하나 받았죠. 배한성(74) 성우의 안부였습니다. 40년 전 이 미니시리즈에서 주인공 루디 역이었다는 것. 대표작이란 표현까지는 좀 그렇지만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행운이었고, 이 작품을 기억해줘서 감격했다는 인사도 적혀 있더군요.

70대에 이른 성우의 30대 시절 목소리와 연기를 상상합니다. 육체도 발성도 탄력 넘치던 당시를. 그리고 이제 탄력 대신 원숙함을 얻은 노년의 성우를 생각합니다. 문득 미국 여성 작가 어슐라 르 귄(1929~2018)이 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황금가지 刊)로 생각이 이어지더군요.

'남겨둘…'은 판타지와 SF의 그랜드마스터라는 르 귄이 팔순에 펴낸 산문집. 소위 '나약한 자'들의 반격이 이 안에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격언.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

늙고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르 귄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나는 정신이 맑고 마음이 깨끗한 90대를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끈기 있고 명료한 정신으로 자신이 얼마나 늙었는지 잘 파악했다."

패기 충만하던 청년 시절과 달리, 요즘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청년 같은 노년'에 대한 열망은 결국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라고.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작가 박범신의 장편 '은교'에 이런 구절이 있죠.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해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상도, 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관리해도 신체는 일정한 세월이 흐르면 무너지기 마련. 노년은 나약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구호는, 사실 매우 잔인한 주장 아닐까요. 르 귄은 말합니다.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배한성 성우가 지난해 조선일보에 썼던 짧은 칼럼 한 대목을 기억합니다. "피곤의 회복이 예전 같지 않게 느껴져도, 나이 듦의 서글픔보다는 70년 넘게 버텨준 내 몸이 고맙기도 하고 지금에 충실하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년의 성우는 세운상가의 빈티지 오디오 수리점을 가보고 싶다더군요. 순한 주말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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