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듀X' PD들이 1~20등 순위 미리 정했다..."1300만 시청자 투표는 대국민사기극"

입력 2019.11.08 14:45 | 수정 2019.11.08 19:41

프듀 PD들 "최종 순위 1~20위 미리 정해뒀다" 시인
시청자 투표 결과는 반영 안 돼… ‘PD픽’으로만 결정
담당 PD-연예기획사 유착 관계…"모종의 거래"
업계 "방송 구조상 CJ ENM ‘윗선’까지 보고 가능성"

음악전문 케이블채널 엠넷의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의 생방송 문자 투표 결과 조작 사건과 관련, 구속된 PD 등 제작진이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연습생 20명의 최종 순위를 사전에 정해놓았던 것으로 8일 확인됐다. PD가 최종 라운드 경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돌 그룹으로 정식 데뷔할 연습생들을 직접 골랐다는 이른바 ‘PD 픽(pick)'을 했다는 것이다.

남성 아이돌 그룹 ‘엑스원’을 탄생시킨 ‘프로듀스X 101’(프듀X)의 최종라운드에선 온라인과 생방송 문자 투표를 합쳐 무려 1300만여표가 나왔다. 하지만 최종 순위는 시청자 투표와는 전혀 무관했던 것으로 확인돼 결국 이 프로그램 자체가 ‘대국민 사기극’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사기와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된 프듀 담당 PD 안준영(40)씨와 상급자인 총괄 프로듀서(CP) 김용범(45)씨는 조사 과정에서 "오디션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연습생 20명의 순위를 1위부터 20위까지 사전에 정해놓았다"는 내용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투표 조작 사건에 이른바 ‘윗선'까지 개입됐을 것을 염두에 두고 엠넷의 모기업인 CJ ENM 수뇌부에 대한 내사에 나섰다.

득표수 조작 의혹으로 제작진이 수사를 받게 된 엠넷 프로그램 '프로듀스X 101'. /엠넷
득표수 조작 의혹으로 제작진이 수사를 받게 된 엠넷 프로그램 '프로듀스X 101'. /엠넷
◇"시청자 투표? 최종 선발은 PD가 한다"
프듀 시리즈는 아이돌 연습생들 101명이 출연해 춤이나 노래, 공연 등으로 평가를 받아 최종 11명이 데뷔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의 생존과 탈락은 시청자 투표로 결정된다. 여기에서 선발된 연습생들은 정식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하게 된다.

프로듀스 시리즈 시즌 3, 4에 해당하는 ‘프로듀스48’과 ‘프듀X’는 모두 3차례의 시청자 투표 과정을 거쳐, 연습생을 20명까지 추린 뒤 이들 20명이 경쟁하는 최종 오디션을 치렀다. 프로듀스48은 20명 중 12명을 최종 선발해 여성 아이돌 그룹 ‘아이즈원’이 탄생했고, 프듀X는 11명을 뽑아 남성 아이돌 그룹 ‘엑스원’이 결성됐다.

그러나 경찰은 두 프로그램의 생방송 시청자 문자투표를 관리했던 업체에 보관된 투표 원본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엠넷이 마지막 생방송 당시 발표한 연습생 순위와 다른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애당초 구속된 PD들이 생방송 문자 투표 결과와는 무관하게 미리 최종오디션에서 합격할 연습생의 순위까지 정해두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제작진과 연예기획사가 조작을 공모했고, 일부는 대가를 주고받은 정황도 파악됐다. 경찰은 안씨가 지난해부터 연예기획사들에게 강남 일대 유흥업소에서 수십 차례 접대를 받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금전 거래는 아니지만 대가를 주고받은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앞서 관계자들의 계좌거래 등도 분석했고 관련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지난달 31일 방송 조작의혹을 받는 CJ ENM 내 프듀X 제작진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섰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된 서울 마포구 CJ ENM 사옥. /연합뉴스
경찰이 지난달 31일 방송 조작의혹을 받는 CJ ENM 내 프듀X 제작진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섰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된 서울 마포구 CJ ENM 사옥. /연합뉴스
◇경찰, CJENM ‘윗선'으로 수사 확대...팬들 "가수만 피해, 사실 규명"
경찰은 프듀 시리즈의 투표 조작 사건과 관련해, 모기업인 CJ ENM의 관여가 있었는지 내사를 시작했다. 지난 5일 경찰은 CJ ENM과 기획사 1곳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순위 조작 과정에서 CJ ENM 수뇌부의 개입이나 관여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속도를 내 최대한 빨리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특히 안씨가 기획사와 유착해 투표 순위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안씨 개인의 일탈이 아닌, 회사 차원의 범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경찰 조사에서 프듀 시리즈 4개 중 올해 방송된 프듀X와 지난해 방송된 프로듀스48의 순위 조작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듀X의 조작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앞서 엠넷이 방영했던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도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현재 프로듀스 3개 시리즈와 엠넷에서 2017년 방영된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 등도 수사 중이다. 다만 안씨는 경찰 조사에서 2016년과 2017년에 방영된 시즌1, 2에 대해서는 순위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PD들은 방송사 구조상 윗선의 개입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PD는 "문제가 된 프로그램은 엠넷에서 주목하는 프로그램이고, 신인을 발굴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기획사를 끼고 기획을 한다"며 "재미와 감동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내세울 인물들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PD나 CP는 물론 윗선까지 보고가 이뤄졌을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방송사 현직 PD 역시 "프로그램 종료 후 데뷔까지 하는 프로듀스 시리즈 특성상 최소한 보고가 올라갔을 것"이라며 "다만, 이게 어느 선까지 올라갔는지, 보고 내용에 순위 조작 필요성도 이야기했는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프로듀스X101' PD 안모씨 등 제작진이 지난 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듀스X101' PD 안모씨 등 제작진이 지난 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팬들도 ‘배후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프로듀스X101과 프로듀스48로 데뷔한 아이돌 그룹 엑스원과 아이즈원의 팬들은 "결국 가수만 피해를 보게 됐다. 사실 규명해 달라" "PD만 책임지면 끝이냐"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은 전날 논평을 통해 "구속된 안 PD가 소속사를 상대로 유흥업소 접대를 상습적으로 받았다는 증거가 나온 만큼 관련 연예기획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도 필요하다"며 "나아가 제작진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엠넷, CJ ENM과 연계됐는지도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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