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 이 작은 郡에 주말이면 4000명이 찾는 이유

입력 2019.11.08 03:02

문화재인 군위성결교회 예배당, 김수환 추기경이 살았던 생가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 쓴 인각사…
개신교·천주교·불교 유적이 모여 '종교 투어'하는 사람들 늘어나

위부터 군위성결교회 문화재예배당, 김수환 추기경 생가, 인각사.
위부터 군위성결교회 문화재예배당, 김수환 추기경 생가, 인각사. /구본우 기자·군위군

경북 군위는 인구 2만4000명의 작은 군(郡)이지만 주말이면 3000~4000명에 이르는 사람이 이곳에 있는 종교 유적을 찾아온다. 내년 100주년을 맞는 군위성결교회, 김수환 추기경이 어릴 때 살았던 생가, 일연의 삼국유사가 태동한 인각사 등 개신교·천주교·불교 유적이 한데 모여 있어 '종교 투어'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군위성결교회 문화재예배당은 읍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았다. 기존의 한옥 예배당을 철거하고 1937년 새로 지은 시멘트 건물이다. 건물을 설계한 임도오 목사는 유교 윤리를 존중하기 위해 두 개의 문을 만들었다. 왼쪽 문으로 남성, 오른쪽으로는 여성 신도가 출입했다. 예배당으로 사용되던 당시에는 남녀를 분리하기 위해 내부에도 휘장이 쳐져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됐다. 최석호 서울과학종합대 레저경영연구소장은 "두 개의 문은 동일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었다. 교회가 조선의 '남녀유별'은 받아들이면서도 근대 평등사상에 따라 '남녀 차별'은 거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예배당은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 291호가 됐다.

이 교회는 일제강점기 지역 항일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일제는 1941년 교회에 동방요배(천황이 있는 동쪽으로 허리를 숙이는 일)를 강요했으나, 최헌 목사는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부흥회에서 '금수강산가' '슬프다 고려반도' 등 독립사상을 담은 노래를 불러 투옥됐다. 성결교단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전국 교회가 폐쇄됐다. 광복 이후 천세광 목사가 성결교회 중 이곳을 가장 먼저 복원했다. 허병국(60) 담임목사는 "다시 복음 앞에 서서 민족과 지역을 섬기겠다"고 했다.

군위군 용대리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네 살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살았던 초가삼간이 있다.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환 추기경 가족과 가장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실상 고향이다. 추기경이 여덟 살 되던 해 옹기장수로 떠돌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옹기와 포목을 팔며 가족을 부양했다. 추기경의 아호 '옹기(甕器)'도 여기서 비롯됐다.

고려 승려 일연은 고로면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했다. 충렬왕 때 국사(國師)를 지냈던 일연은 아픈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군위로 낙향했다. 이후 4년에 걸쳐 한국 고대 신화와 설화·향가를 집대성한 삼국유사를 썼다. 조계종이 한국 불교의 주류가 된 것 또한 인각사와 관련이 깊다. 일연은 이곳에서 무신정권을 반대하고 왕정복고를 주창하며 두 차례의 대규모 조계종 결사를 열었다.

일요일 기준으로 김수환 추기경 생가는 하루 700~800명, 인각사는 500~800명이 방문한다. 최근엔 일부 학교에서 주말 종교 투어로 군위를 찾는다. 군위성결교회는 내년 가을부터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성결교회, 김 추기경 생가와 현재 공사 중인 삼국유사 테마파크를 경유하는 투어를 정기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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