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아빠의 약손

조선일보
  • 송은혜 2019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입력 2019.11.08 03:02 | 수정 2019.11.08 05:11

송은혜 2019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송은혜 2019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며칠 전 아빠에게 부재중 전화가 왔다. 택배 상자를 배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잘못 걸었다는 말에 김이 팍 샜다. 점심 거르지 마시라고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아빠가 소금물 치료를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환절기마다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는 줄 알고 꺼낸 이야기다. 아빠는 수돗물에 굵은 소금 한 숟가락을 풀어, 콧구멍을 한쪽씩 담가 소독을 하라고 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근거 없는 치료법이란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굴하지 않고 꼭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고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우리 집 민간요법 몇 가지가 있다. 소화가 안 되면 사이다에 달걀노른자를 풀어 후루룩 마시기,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 박수 스무 번 치기 등. 아빠는 어린 내 손을 잡고 동네 굴다리를 지나다가 돗자리에 쭉 진열된 책 중에서 '가족 건강 만사형통 비법'을 주저 없이 골랐다. 낚시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할아버지도 먼지 쌓인 책이 팔리자 덕담을 해주었다.

나도 아빠를 닮았다. 잠잘 때 코가 막혀 불편한 아이 머리맡에 조각조각 썰어 담은 양파 망을 놓았다. 매운 양파 냄새에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며 소아과행을 추천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몸을 뒤척이며 짜증 내던 아이는 금세 깊은 잠이 들어 새근새근 고운 숨소리를 낸다. 나는 '봤지?' 하는 표정으로 남편을 돌아보았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당뇨로 오래 고생한 아빠가 손주들을 모아놓고 배꼽 옆에 인슐린 주사 놓는 걸 보여준다. 아이들은 괴물이라도 만난 듯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껄껄 웃으며 주사 뚜껑을 찾는 아빠에게 왜 아이들에게 겁을 주시냐며 쓴소리를 했다. 속상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말을 하곤 속이 쓰렸다.

오늘은 친구와 수다를 떠는 대신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잘못 눌렀네"로 시작한 대화는 드문드문 공백이 있지만 따스하다. 출가한 딸 비염 걱정해 주는 사람은 아빠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59초의 짧은 통화는 내 마음 어루만지는 약손이 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