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군복에 대한 모욕

조선일보
입력 2019.11.08 03:05

군복은 다른 제복과는 다르다. 군복을 입으면 병력(兵力)이 된다. 사람이기에 앞서 국가의 '힘'을 구성하는 자산이다. 그래서 군복을 '군인의 수의(壽衣)'라고 한다. 여기엔 비장함과 함께 엄청난 명예와 자부심이 담겨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희생의 극치가 군복에 담겨 있다. 군복 중에서도 장군복은 명예의 정점이다. 장군으로 진급하면 금실로 수놓은 정복과 예복 모자의 무궁화 꽃봉오리가 크고 화려해진다. 수장(繡帳)이라고 하는 소매에 두르는 검은 띠의 폭도 넓어진다. 드레스 셔츠 색상도 쑥색에서 고급스러운 백색으로 바뀐다. 멋진 옷 입고 폼 잡으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 목숨, 가족보다도 국가를 앞세우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수사받게 된 박찬주 대장은 '군복 출석'을 두고 군 검찰 측과 신경전을 벌였다. 군 검찰은 군복 출석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박 대장은 군을 망신주려는 의도라 생각하고 양복을 입고 군 검찰에 출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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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에 육군 중령이 군 정복 차림으로 출석해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출석 말라는 백악관 지시가 있었지만 중령은 '나의 충성 대상은 트럼프가 아니라 미국'이라며 출석했다. 제복 존중이 유별난 미국에서 군복 입은 사람의 말 무게는 달랐을 것이다. 중령 가슴팍에는 이라크 전쟁에서 부상하고 받은 훈장까지 번쩍이고 있었다.

▶그제 3성(星) 장군 국방정보본부장이 국회에 출석해 한 달 전 자기가 한 말을 뒤집었다. "북이 ICBM을 이동식 발사대로 발사 가능한 수준"이라더니 그제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군사 비전문가 청와대 안보실장이 그렇게 말하니 총총히 따라가 말을 맞춘 것이다. 적정(敵情)을 허위로 보고해 아군에게 피해를 끼치면 전시에는 처형할 수도 있다. 그가 어깨에 별 셋이 번쩍이는 군복을 입고 국가 아니라 권력에 아첨하는 것을 본 많은 사람이 혀를 찼다. 군복에 대한 모욕이다.

▶전임 육참총장은 서른다섯 살 5급 청와대 행정관이 물어볼 게 있다고 하자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전방 사단장은 방문한 여당 의원들에게 휴전선 GP 철조망을 액자에 담아 선물하는 기발함을 선보였다. 적폐 몰이에 쫓겨 투신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빈소를 군 수뇌부는 물론 동료 군인들이 거의 찾지 않았다. 이 전 사령관 빈소에서 한 인사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똥별들 전우애가 일개 병졸만도 못하다." 군복은 입었으되 군인이 아닌 사람들은 적과 싸워 이길 수 없다. 이들은 전세가 불리하면 투항까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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