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박지만씨와 동갑인데요

조선일보
입력 2019.11.08 03:04

뺑뺑이 세대 58년 개띠… 빈곤서 풍요, 독재서 민주
요동치는 시절 몸으로 겪어… 세태·가치관 뒤집혀 무거운 마음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대통령 아들 박지만군과 동갑이란 걸 국민학교 6학년 때 처음 알았다. 상급 학교 갈 때마다 입시 제도가 요동쳤는데 다들 '박지만 때문'이라고 했다. 중학교 배정받을 때 작은 은행 알에 새긴 번호표를 받으려 물레처럼 생긴 팔각통 추첨기를 돌렸다. 그게 이른바 '뺑뺑이 세대', 58년 개띠다.

교과서에 신호등 설명이 나왔다. '빨강은 서시오, 파랑은 가시오, 노랑은 돌아가시오'였다. '화살표'는 아직 없었다. 내가 살던 도시는 신호등이 딱 하나 있었다. '서시오·가시오'는 알겠는데 '돌아가시오'는 해독 불가였다. 교통 시스템이 아무리 삼엄해도 제 길 가던 차를 어찌 집으로 돌아가라 하나. 그게 '좌회전'이란 건 한참 뒤 알았다.

서울에 올라오니 '깍쟁이 말투'가 귀에 설었다. 방학 때 서울 친구가 대뜸 "시골 갔다 왔니?" 물었다. 내 나름대로 도청 소재지 출신인데 자존심 상했다. 고향 집에선 물 온도를 '차다' '뜨겁다' 했는데, 서울내기는 "더운 물 있니?" 하고 물었다. "그럼 '추운 물'도 있냐?"고 되묻진 못했다. '더운 물'이 완전히 '쎄련돼' 보였다.

대학 땐 농법회 같은 '언더'에는 끼지 못하고, 학보사와 대학 신문사에서 학생 기자를 했다. 김민기 노래를 불렀다. 학생 식당에서 유인물을 뿌리다 '짭새'한테 개처럼 끌려가는 친구도 봤다. 기사는 못 썼다. 1981년 1월 졸업했다. 그해 5월 캠퍼스에선 '광주 항쟁' 1주년 침묵 시위를 벌였는데, 중앙 도서관 6층에서 한 학생이 "전두환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우리는 술 취하면 "부끄럽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 달 뒤 입대했다. 강원도 원통 12사단 보병 부대에서 M60 기관총 부사수로 근무하던 중 삼청교육대를 봤다. 철책 근무에 들어간 예하 연대의 '훼바지역' 막사는 그대로 비워두었는데, 그곳에 삼청교육대가 들어왔다. 향로봉 진지 공사에 나갔다 귀대하던 12월 하순, 팔꿈치와 무릎에 구멍이 뚫려 맨살이 드러난 황토색 낡은 군복을 입고 얼음 덮인 길바닥을 낮은 포복으로 기던 나이 든 아저씨들을 목격했다. 기간병들이 M16을 들고 통제하고 있었다. 며칠 뒤 사단 보안대 상사가 보자고 했다. '존경하는 교수님' 이름을 쓰라 했다. 정치·사회학 교수님은 숨기고 프랑스 어학·문학 교수님만 적어냈다.

'근검절약'을 붓으로 습자지에 써서 교실 뒷벽에 붙였고, 선생님은 "독일인은 담배 피울 때 넷이 모여야 비로소 성냥 하나에 불을 붙인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비는 미덕'으로 변했다. 혼식 검사 때 '벤또'에 보리알이 없다고 손바닥 맞았는데, 언젠가부터 정부가 쌀막걸리를 마시라고 부추겼다. 평생 '차는 우측, 사람은 좌측' 통행이었는데, 이젠 사람도 우측 통행이니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오른쪽에 서란다. 지금 사는 '무악재' 주소를 '통일대로'로 적으라 해도 다들 수굿했다. 나는 국가에 불평하지 않는다.

어느 날 동갑내기들이 육군 '쓰리 스타'가 됐다. 장교 식당 조리병이던 아들이 세 끼 식사를 서빙했다던 양 장군, 친구의 친구인 전략가 신 장군, 보안통인 이 장군 등이다. 그런데 박지만씨와 육사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4성 장군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지만군'과 나도 동갑이라는 걸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런데 육군 대장이 되었던 동갑내기 박 장군은 '갑질 논란'으로 고생하더니 이제 정치를 할 모양이다. 자신을 공격했던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삼청교육대 교육을 한번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다. 돌아보면 시절이 참 많이 요동쳤다. 뒤집히는 세태와 그 가치관들 위에 내 이름을 적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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