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핵 없는 韓에 돈 뜯는 트럼프, 핵도 없이 안보 포퓰리즘 文

조선일보
입력 2019.11.08 03:09

미국이 현재 진행되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이전보다 5배 오른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우리 쪽에 요구했다고 한다. 한국민은 적정한 정도의 방위비 분담금을 부담할 용의가 있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5배라니 아무리 부동산 업자의 거래 수법이라고 해도 어이가 없다. 과거 최고 인상률이 25.7%였다. 5배 요구는 핵무기가 없는 한국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뜯겠다는 협박과 다를 것이 없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 핵 국가들 앞에 핵 비무장으로 노출돼 있는 한국민을 향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의 가치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다. 미국을 위해 1만명의 목숨을 바친 쿠르드족을 헌신짝처럼 배신했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월세 받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돈이 안 되면 무슨 협박 카드를 들고나올지 모른다. 미국 협상 대표는 '주한 미군 철수·감축 우려'에 대해 "트럼프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했다. 완전히 협박이다. 미국 대통령이 우리 안보의 '위험 변수'가 돼 버렸다.

트럼프 리스크만이 아니다. 이 정부는 핵무장한 120만 북한군 앞에서 국군 병력을 62만에서 50만으로 줄인다고 한다. 육군 사단 6개가 없어지고 최전방 사단이 지켜야 할 전선이 1.2배 늘어난다. 저출산으로 병역의무자가 어쩔 수 없이 감소하는 만큼 전력(戰力)을 유지하려면 복무 기간을 늘려야 정상 국가다. 그런데 거꾸로 복무 기간을 줄이고 있다. 유사시 7년 이상 장기 복무하는 북한군 전면 공세를 18개월 복무에 절반 병력인 국군이 정말 막아낼 수 있나. 북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안정화 작전을 펴는 데도 26만~40만 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본적 병력 부족은 첨단 장비로 메꿀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위중한 안보 상황에서 우리가 국방 실험을 할 처지인가.

민주당 싱크탱크는 7일 보고서에서 "모병제는 인구 절벽 시대에 병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모병제는 장단점과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다.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지금 당장 공론화를 시도하는 것은 내년 총선에서 20대 남성들에게 '군대 안 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줘 표를 얻으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대선이 다가오면 대통령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복무 기간을 더 줄이는 공약을 내놓을 것이다. 세계에서 안보 위협이 가장 큰 나라가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복무 기간이 줄어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한미연합사 창설 기념사에서 "전작권 전환에 더 심혈을 기울여 달라"고 했다. 임기 내 전환이 목표다. 이 역시 정치 포퓰리즘일 뿐이다. 북은 핵이 있고 우리는 없다. 북핵은 미국의 핵·재래식 전력을 총동원하는 확장 억지력으로만 제어할 수 있다. 한국군엔 확장 억지 자산이 단 하나도 없다. 북핵 동향을 감시할 능력조차 없다. 그런 한국군이 미군 확장 억지를 어떻게 지휘하나.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전시작전권 환수와 같은 멋진 말로 인기를 끌려고 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70년간 우리는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북·중·러의 위협을 막으며 평화와 발전을 누려왔다.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 대통령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한국 대통령의 포퓰리즘이 겹쳐 마치 쓰나미가 안보 방파제를 넘어올 듯한 상황이다. 지금 미국에선 비록 일각이지만 한·일의 자위적 핵무장, 핵 공유 협정, 전술핵 재배치 등을 공개 거론하고 있다. 위기 속에서 빛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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