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즐기고, 정치에도 등장… 수학의 시대가 왔다

조선일보
입력 2019.11.07 03:00

인터넷 수학 카페·강좌 인기… 비전공자 위한 책 출간도 잇따라
"한 문제로 몇 시간씩 고민해도 상관없는 게 재미이자 힐링"
美 대선 후보 'MATH'를 구호로… 英 지폐인물로 수학자 튜링 선정

이모(27)씨는 수학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였다. 수학에 한(恨) 맺힌 그가 지난 4월 포털 사이트에 취미 수학 카페를 개설했다. 수학 전공자와 비전공자 70여명이 수학 문제를 풀거나 수학책을 읽은 뒤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씨는 "수학을 취미로 접하면서 재미를 느꼈다"며 "유튜브에서 수학 강의를 보면 세상만사에서 벗어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취미 수학'으로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제를 풀거나, 수학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다. 학창 시절 그토록 수학을 싫어하던 이들은 왜 뒤늦게 '수즐자'가 된 걸까?

사진1~3
①앤드루 양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가 'MATH'(수학)라고 적힌 구호 앞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MATH는 '미국을 더 열심히 생각하게 하자(Make America Think Harder)'는 문장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②2021년 영국에서 나올 50파운드 지폐에는 수학자 앨런 튜링의 초상과 그의 수학 공식이 실린다. ③유튜브에서 '취미 수학' 강의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강사 이상엽. /게티이미지코리아·뱅크 오브 잉글랜드·유튜브
생각 없이 살기 싫어서 수학을 한다

회사원 서승연(35)씨는 지난 9월부터 자신이 푸는 중학교 수학 문제를 블로그에 올린다.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할 때마다 포기하거나 인터넷부터 찾는 습관이 업무나 일상에 지장을 가져왔다"며 "논리력과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 수학 풀이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한 문제를 갖고 몇 시간씩 고민해도 상관없는 것이 취미 수학의 재미"라고 했다. 김다미(37)씨에겐 수학이 힐링이다. 여섯 살 아들이 수학 문제를 물었을 때 "아빠한테 물어봐"라고 말할까봐 창피해서 초등학교 수학책부터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문제를 풀다 보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간다"며 "아이 교육 때문에 시작했는데 오히려 잡생각을 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 됐다"고 했다.

수학을 공부하는 성인들이 꼽는 수학의 장점은 '생각하는 힘'. 이들은 포털 사이트,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정보나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가지면서 사고력과 논리력에 도움 되는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들을 겨냥해 지난해부터 서점가엔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AI, 빅데이터에 숨어 있는 수학의 아름다움'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수학이 필요한 순간' 등 비전공자를 위한 수학책이 쏟아져 나왔다. '하루 한 문제 취미 수학'이란 책도 출간됐다. '수학의 신'으로 불리는 유명 강사가 올린 취미 수학 동영상은 조회 수가 4만 건이 넘는다.

최근 미국 민주당 경선 후보로 급부상한 앤드루 양은 수학에 관심 있는 유권자들을 공략했다. '매스(MATH·수학)'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다니고, 스스로를 "도널드 트럼프의 반대는 (나처럼) 수학을 좋아하는 아시안 남성"이라고 소개한다. 'MATH'는 수학을 뜻하는 동시에 '미국을 더 열심히 생각하게 하자(Make America Think Harder)'는 문장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가짜 뉴스와 비이성으로 대변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로 수학을 내세운 셈이다.

AI와 빅데이터 시대에 수학자도 인기

AI나 빅데이터가 중요해지면서 수학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C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수학과는 취직이 가장 잘되는 대학 전공 10위 안에 들었다. 수학 잘하는 사람을 '너드'(nerd·괴짜)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수학자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2010년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프랑스 수학자 세드리크 빌라니는 최근 파리 시장 선거에 나가 지지율 3위까지 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AI 보좌관과 하원의원을 겸직해오던 그는 "AI를 활용해 망가진 벤치가 어디 있는지, 쥐 떼가 어디에 서식하는지 등의 정보로 파리 시청이 더 빨리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호응을 얻었다.

2021년 영국에서 나올 새로운 50파운드짜리 지폐엔 수학자 앨런 튜링의 초상과 그의 1936년 논문의 수학 공식이 들어간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영국중앙은행) 총재는 튜링을 "우리의 현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업적을 남긴 뛰어난 수학자"이고 "컴퓨터 과학과 AI의 아버지"라고 밝혔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