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님비'에 막힌 4차산업

입력 2019.11.06 03:14

정철환 산업2부 차장
정철환 산업2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네이버의 연례 개발자 행사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이 필요하다"며 관련 기업에 전폭적 지원을 약속할 때, 정작 네이버는 이 회사의 제2데이터센터 건립을 재(再)추진하는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이 데이터센터는 이미 용인 공세동에서 한창 건립 중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5월 용인 주민들이 '고압선 통과'를 이유로 부지 매입까지 끝낸 데이터센터 건립을 반대하고 나섰다. 유치에 적극적이던 용인시마저 사실상 중재를 포기하면서, 네이버가 2017년부터 공들인 용인 데이터센터는 순식간에 신기루가 됐다. 세종시를 새 우선 협상대상지로 정했다는 발표는 그렇게 몇 년을 허송세월하고 나온 중간 결과다.

이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다. 문자와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데이터가 여기에 차곡차곡 쌓여, 사람처럼 보고 듣고 상황을 파악해 답을 만들어 내놓는 AI의 재료가 된다. 이 정부가 부르짖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이 치켜세운 삼성의 디스플레이 투자 확대 못지않게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에 절실한 투자다.

그러나 용인 데이터센터 무산 당시 지자체는 물론 정부 부처나 국회, 청와대 그 누구도 이를 막으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데이터센터 유치 소식에 신이 났던 이들이 '고압선 지나간다'는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반대로 돌아섰고, 표 떨어질까 두려운 정치인과 그들 눈치를 보는 공무원들은 줄곧 꿀 먹은 벙어리였다는 말만 회자됐다.

우습게도 네이버가 새 부지 선정에 나서자, 다시 10여 개 지자체가 달려들었다. 대량의 전기를 실어나를 고압선을 놓으려 지자체마다 한전을 찾아왔고, 이들에게 시달린 한전이 불평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세태에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 대한민국에 팽배했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내 재산, 내 권력 같은 눈앞의 이득만 따져 입장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하는 행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는 '합리적 판단'은 사라진 지 오래다.

년 뒤 세종시에서 똑같은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렵다. 주민들이 따지고 문제 삼을 만한 것은 고압선 외에도 많이 있다. 2년 전 용인시도 지금의 세종시와 같은 입장이었다. 다만 상황이 바뀌니 입장이 바뀌었고, 누구도 그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뿐이다. 투자하겠다는 기업만 바보가 된다. AI라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이율배반의 오류가 상식처럼 벌어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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