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A씨, 2년간 근로계약만 20번…"해고 불안 심각"
입주민 민원은 곧 해고…경비 업무 외 잡무도 말 못해
전문가들 "기형적 고용 형태… 제도적 개선 대책 필요"

"월말 다가오면 피가 바짝바짝 마르지. 혹시 다음달부터 나오지 말라고 할까봐… ‘파리목숨’이 이런 거지 뭐."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 경비원 A(72)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재작년 가을부터는 잠을 잘 못 자고, 건강도 영 안 좋아졌다"고 했다. A씨가 근심에 빠진 것은 2017년 10월. 이 아파트에 경비원을 파견하는 용역업체가 바뀌면서부터다. 기존 1년씩 계약하던 용역업체와 달리 새로 온 업체는 경비원들의 연간 근로계약을 월 단위로 바꿨고, 월말마다 근무평가를 통해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지난 2년간 맺은 근로계약만 스무 번이 넘는다. A씨는 "계약 조건이 바뀌고 나니 일단 심적으로 부담이 많다. 이러다 지쳐서 내가 먼저 그만둘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바로 옆 단지 아파트의 경비원 B(73)씨. 30대로 보이는 입주민이 아파트 현관 입구가 지저분하다고 한마디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집게와 빗자루를 들고 나가 쓰레기를 줍고 낙엽을 쓸어담았다. 커다란 포대자루가 이미 두 자루나 가득 차 있었다. 그 와중에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먼저 꾸벅 인사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너무 부지런하신 것 같다. 이런 일들도 원래 하셔야 하는 거냐"고 묻자 "(입주민들한테) 찍히면 끝이야. 내 일이다 아니다 따져서 뭐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주민들한테는 꼼짝도 못한다"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월계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순찰을 돌기 위해 경비실을 나서고 있다. 근로계약을 월(月) 단위로 맺는다는 이 경비원은 "월말마다 일자리를 잃진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아파트 주민이 싫은 소리를 해도 혹 고용에 영향을 미칠까봐 아무 대응을 못한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초단기계약’에 시달리고 있다. 1년 단위 계약이 보통이지만, 최근 들어 6개월, 3개월 등으로 계약 기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일수록 더욱 그렇다. A씨와 B씨가 근무하는 아파트들처럼 1개월짜리 계약까지 등장했다. 노원구의 이 용역업체의 경비원 52명은 1개월 주기로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어오고 있다. 한 경비원이 보여준 근로계약서에는 수습기간 3개월과 첫 근무기간 1개월을 합친 4개월 뒤부터 매월 자동으로 계약을 ‘연장’하거나 ‘만료’하도록 돼 있었다. 재직기간 중 근무태도, 능력, 자질, 건강상태 등을 종합 판단해 업무에 부적격한 경우 정식 채용 및 계속 근로를 거부 또는 취소할 수 있다고도 해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비원들은 자기 업무 외 기타 잡무를 마다할 형편이 못된다. 자칫 계약해지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민원’을 피하기 위해서다. 현행 경비업법상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거나 택배를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행위 등 경비 업무가 아닌 일을 시키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대부분 관행적으로 경비원들에게 업무 외 잡무를 시킨다. 계약기간이 짧은 경비원들 입장에선 혹시나 계약 연장이 안 될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야 하는 셈이다.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의 근로계약서.

경력 10년의 경비원 C(65)씨도 처지는 비슷하다. 그는 페인트칠부터 펜스설치공사까지 경비원으로 있으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참다못해 "경비 업무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더니 업체로부터 "그럼 다음달부터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1개월짜리 초단기계약을 맺은 지 6개월만이었다.

지난해 시행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 갱신이 가능한 기간은 2년이지만, 55세 이상의 노동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60~70대인 경비원들의 경우 법에 호소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실제 초단기계약이 부당하다고 느낀 경비원 D(68)씨는 지난해 4월 고용노동부를 찾아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였다. D씨가 "너무 억울하다. 세상에 이런 계약서가 도대체 어디있냐"고 하자,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다른 데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했다.

"초단기계약을 맺은 근로자는 사실상 사용자에게 목줄이 잡힌 거에요. 1~3개월마다 계약 연장 기로에 서게 되니 자연스레 근로자는 사용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부당한 업무를 시켜도 이의제기를 못 하게 사실상 입을 막는 겁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는 "입주자대표회의나 용역업체가 경비원들을 쉽게 해고하고,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초단기계약을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지역 아파트 40여개 단지 경비 노동자 52명 중 1년 이상 계약직은 19명(36%)에 불과했다. 6개월 미만 초단기 계약직은 33명으로 63%나 됐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 단지 소속 경비원이 아파트 지하에 마련된 휴게공간을 살펴보고 있다.

경비용역업체들도 할 말은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일부 업체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계약 기간을 짧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경비원들 근태관리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근무 중 음주를 하거나 입주민에게 불친절한 경비원들이 더러 있다"며 "이럴 때 즉각적으로 우리가 대응해야 아파트와 계약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지원센터 소장은 "초단기 계약은 안 그래도 일자리 기회가 적은 고령근로자들을 갑질의 대상으로 만든다"며 "근로기준법 위반은 아니지만 고용안정과 처우보장이라는 입법 취지에 비춰보면, '사실상 불법'이므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비원 같은 상시근로자에게 단기 근로계약을 못 하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그보다 근로계약을 근로자를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업체 관행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