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윤 기자의 혼자 보긴 아까워] 인간과 괴물… 그 경계는 무엇일까

조선일보
입력 2019.11.01 03:00

'경계선'

황지윤 기자
내가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면?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주 개봉한 스웨덴 영화 '경계선'(감독 알리 아바시)의 주인공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염색체 결함으로 남들과 약간 다른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후각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가는 곳마다 번개가 치고, 자꾸만 구더기가 먹고 싶은 건 그냥 내가 이상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티나는 자신과 어딘가 닮은 듯한 보레(에로 밀로노프)라는 인물을 만나고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경계선'
/조이앤시네마

"난 누굴까요?" "트롤요." "…미쳤군요." 트롤은 북유럽 신화에 종종 등장하는 상상 속 괴물. 내가 그런 이상한 존재라는 걸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한번 인정하고 나면 세상만사가 편해진다. 배고프면 땅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를 손으로 집어 오도독 씹어 먹고, 보레와 함께 발가벗고 숲속을 뛰어다닌다. 강물에서 헤엄치고, 사랑도 나눈다. 인간 관객의 입장에서 이를 '사랑'이라 해야 할지 '교미'라 해야 할지는 모호하지만.

누군가에게 쉽지 않은 영화가 다른 누군가에겐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가 선(線)을 건드리는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미와 추, 선과 악, 인간과 비인간 같은 구분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해방감을 줄 수도 있다.

장르도 선을 넘나든다. 아동 포르노를 제작하는 범죄자들을 쫓는 북유럽식 스릴러 영화의 얼개를 따르지만, 어느 순간엔 판타지 영화였다가 갑자기 19금(禁) 로맨스 영화가 되기도 한다. 영화 '렛미인'의 원작 소설 작가이자 각본가인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았고,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분장상 후보에 올랐다.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에바 멜란데르가 당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건 여성도, 남성도 아닌 완벽한 트롤을 연기해서가 아닐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