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거리에 내려 앉은 한 마리 '학'

조선일보
입력 2019.11.01 03:00

건축 巨匠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비통 메종 서울' 어제 개장
"동래 학춤서 영감 받은 디자인" 4층에선 자코메티 특별전 개최

'키가 큰 여인Ⅱ'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끝을 달리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90)의 작품을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루이비통은 게리가 설계한 한국 첫 건축물인 서울 청담동 매장 '루이비통 메종 서울'을 31일 개장했다. 게리는 천편일률적인 기존 건축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담한 디자인을 구가해온 해체주의의 거장이다. 1989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체코 프라하의 댄싱하우스(1996), 미국 로스앤젤레스 월트디즈니 콘서트 홀(2003) 등 비틀리고 휘고 구겨진 듯한 형태의 건축은 세계 어디서든 게리의 작품을 알아보게 하는 전매특허다. 특히 대표작인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1997)은 침체된 도시를 되살리는 구심점이 됐다. 하나의 강력한 건축물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도시 재생을 이끈다는 뜻의 용어 '빌바오 효과'가 여기서 나왔다.

루이비통 메종 서울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다. 쇼윈도부터 솟아오른 유리가 건물 위쪽에서 추상적인 몸짓을 취하며 공중으로 흩날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게리 특유의 비정형 구조물은 곡면 유리를 사용해 무게감이 산뜻하다. 건물 양옆의 반듯한 석벽과 대조를 이룬다. 게리는 "한국 문화의 전통적 가치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건물의 인상을 결정짓는 이 디자인은 흰 도포 자락이 너울거리는 동래 학춤에서 착안한 것이다. 며느리가 한국인인 게리는 과거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의 자연과 건축, 특히 종묘에 대한 경탄을 드러낸 바 있다.

이 건물 디자인은 역시 게리가 설계한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연장선에 있다. 2014년 개관한 루이비통 미술관은 범선(帆船)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3600개의 맞춤형 유리판으로 총면적 1만3500㎡(약 4000평)에 달하는 12개의 돛을 표현했다.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 설계로 31일 개장한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 그의 한국 첫 건축물이다. 동래 학춤의 너울거리는 도포 자락을 형상화했다.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 설계로 31일 개장한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 그의 한국 첫 건축물이다. 동래 학춤의 너울거리는 도포 자락을 형상화했다. /루이비통
개장을 기념해 새로 설치한 쇼윈도에도 게리의 손길이 묻어 있다. 커다란 종이를 구겨놓은 듯한 색색의 나무들을 마네킹과 함께 세웠다. '구겨진 종이(crumpled paper)'는 게리 특유의 디자인을 가리키는 은어처럼 통용돼 왔다. 월트디즈니 콘서트 홀 완공 후인 2005년 게리가 미국의 인기 만화 시리즈 '심슨 가족'에 등장하면서 널리 퍼졌다. 그가 직접 목소리를 연기한 이 만화에는 게리가 콘서트 홀을 지어 달라는 편지를 받고 구겨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구겨진 모습이 썩 그럴듯함을 알아챈 게리가 그대로 콘서트홀 디자인에 차용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뒤에 게리는 이 '구겨진 종이 기원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2015년 호주 시드니 공대 캠퍼스에 설계한 경영대학원 건물은 '구겨진 종이가방 빌딩'으로 불리며 오페라하우스에 필적하는 시드니의 새 명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 건축물의 4층은 전시장으로 운영된다. 개관전으로 내년 1월 19일까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을 연다. '키가 큰 여인Ⅱ'〈작은 사진〉를 비롯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소장품 8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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