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만든 저력이면 좌우 갈등도 이겨낼 수 있어"

조선일보
입력 2019.11.01 03:00

'재러드 다이아몬드'

국가 위기 극복 방안 분석한 신작 '대변동' 출간 기념해 한국 찾아
"여성에 대한 불평등 해결이 국가 번영으로 가는 포인트"
"北과의 일회성 만남 홍보보다는 지속적인 대화 유지에 주력해야"

"한국의 좌우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는 말에 재러드 다이아몬드(82)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도 정치의 양극화가 문제라는 것이 흥미롭다. 전 세계적 현상인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이를 헤쳐나가려면 온 국민이 긍지로 여길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세종대왕이 창안한 한글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를 가진 민족이 없다는 것, 오랜 식민과 6·25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민족의 저력 등이 답이 될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문명 간 불평등을 환경적 차이로 분석해 전 세계 500만부 넘게 팔려나가고, 1998년 퓰리처상을 받은 '총·균·쇠'의 저자. 하버드 학부에서 인류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진화생물학, 생태학, 언어학 등 각종 학문을 넘나드는 '박식가(polymath)'다. 미국, 일본, 핀란드 등 7개국 사례를 통해 국가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한 신작 '대변동'을 출간한 뒤 방한한 그는 30일 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한국이 만일 생산성을 30% 더 개선하고 싶다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면 쉬울 것”이라고 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한국이 만일 생산성을 30% 더 개선하고 싶다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면 쉬울 것”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좌우 갈등뿐 아니라 한·일 갈등도 심하다. 북한과의 관계도 갈수록 꼬인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한국은 이미 번영했는데 여기서 더 번영하고 싶다는 건가?(웃음). 중국과 북한이라는 공동의 라이벌을 둔 한·일이 관계가 불편한 건 비극이다. 일본은 피해 국가 폴란드를 방문해 무릎 꿇고 사죄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에게 배워야 한다. 남북문제에 관해서는 핀란드가 참고가 될 것 같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끊임없이 대화했지만 그를 요란하게 홍보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내실 있게 진행했다. 북한과의 만남이 늘 일회성에 그쳤으면서도 이를 홍보하는 데만 주력해 온 한국은 지속적인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핀란드의 전략을 배워야 한다."

―당신의 책 '대변동'에서 현대 일본의 위기 요인 중 하나로 여성 차별, 출산율 급감, 고령화를 짚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동의한다. 그런데 출산율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자원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데, 인구가 줄면 이를 먹여 살릴 자원 수입 부담도 줄어드는 거라 꼭 단점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인구가 줄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하는데 남한의 5000만 인구는 고등 교육을 받은 양질의 인구다. 4000만이 된다 해도 제3세계 국가의 1억3000만 인구와 비교가 안 된다. 인구 문제에 대해서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베스트셀러인 '총·균·쇠'의 한국어판 서문에선 한글의 우수성을 칭찬했다. 조선일보는 창간 100주년 기획으로 한글 관련 캠페인을 하고 있다. 한글이 왜 훌륭하다고 생각하나.

"훌륭하니까! 세상엔 '최고의 문자 체계'와 '형편없는 문자 체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한글이야말로 최고의 문자 체계다. 완벽하게 설계됐다. 자음과 모음이 모여 하나의 음가를 이룬다는 점이 그렇다. 영어만 해도 '총(gun)'이라 하면 알파벳 세 글자가 모여야 하는데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모인 단 한 글자로 0.001초 만에 그 뜻을 알아볼 수 있다. 사실 1997년 '총·균·쇠'를 쓰려고 준비하기 전까지는 한글에 대해 전혀 몰랐다. 책을 준비하다가 이런 문자가 있다는 걸 알고 그 완벽한 체계에 놀랐다."

팔순이 넘은 다이아몬드는 아직도 종이에 0.7㎜ 굵기의 샤프펜슬로 글을 쓴다. 그가 이용하는 유일한 디지털 기기는 4년 전 구입한 아이폰. "아내가 연락이 안 되니 답답해 미치겠다며 사라고 명령했다. 전화 걸고 받고, 문자랑 이메일을 보낼 순 있는데 사진 촬영과 인터넷 검색까지는 안 하고 있다." 시간 정해 글을 쓰는 '회사원형 저술가'는 아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산책하며 새를 관찰하고, 여섯 살 때부터 연마해 수준급인 피아노를 치고, 아내와 대화하는 틈틈이 글을 쓴다고 했다.

―다음 책은 구상하고 있나.

"물론. 정치, 비즈니스, 스포츠의 리더십에 대한 것이다."

―언제쯤 나올까.

"5~6년 후쯤. 내 모든 책은 집필에 5~7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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