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살려내라 악플러들아"라고 쓴 사람, 알고보니 악플러

조선일보
입력 2019.10.26 03:00

[아무튼, 주말]
"내 글은 정당" 악플의 심리학

가수 겸 배우 설리.
지난 14일 세상을 떠난 가수 겸 배우 설리. / 에스티로더

#1. "설리 살려내라 이 악플러들아." 지난 14일 설리 부고 기사의 한 댓글이 논란이 됐다. 설리가 오랜 기간 악플에 시달렸기에 그녀의 팬이라면 악플러들이 원망스러울 만하다. 반전은 글쓴이의 과거 댓글이었다. "노래방 도우미 같다. 정신 차려라" "얘도 치명적인 척이 심하다"…. 글쓴이는 불과 한 달 전 다른 여가수들을 훈계하는 댓글을 썼다. 설리에게는 "동성애자인가?"라며 악플을 달았다. '악플 내로남불' 지적을 받자 그는 "나도 똑같은 악플러였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반성하겠다"며 모든 글을 삭제했다.

#2. 설리가 사망하자 일부 네티즌은 설리의 전 연인인 래퍼 최자의 소셜미디어에 "당신이 방송에서 설리와 사귀는 것을 자랑할 때 설리는 악플에 시달리고 있었다. 책임감 없는 사랑을 했다"며 나무라는 댓글을 썼다. 욕설이나 성희롱은 없었다. 하지만 가수 핫펠트는 "표현의 자유도 때와 장소를 가려라.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소금 뿌리지 마라. 당신은 그럴 자격 없다"는 답글을 달아 맞섰다.

어디까지가 악플인지는 기준이 모호하다. 고소장이 날아오기 전까진 자신이 남긴 댓글이 악플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 당사자가 불쾌감이나 모멸감을 느끼면 악플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악플이라고 해서 모두 규제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연예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비판은 모두 악플일까.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댓글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연예인의 경우 댓글을 통해 대중의 요구를 알고 활동에 반영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으로 기울어진 댓글은 악플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부모님이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권하는 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처럼 선플(착한 댓글)도 악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설리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을 올려 논란이 되면 어김없이 '실망스럽다. 이상한 사진 말고 예쁜 사진을 올려달라'며 훈계하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설리를 걱정해 썼다지만 당사자에겐 악플이었을 수 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욕설이 없어도 비난적 요소가 담기면 악플이다. 다른 사람의 심리를 통제하는 행동인 '죄책감 유발하기'와 '주었던 사랑 철회하기'가 연예인에겐 심리적 타격을 주기 위해 쓰인다"고 했다. 최자에게 달린 댓글이 '죄책감 유발하기' 사례이고, 설리에게 실망했다고 쓴 댓글이 '주었던 사랑 철회하기'라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글과 그림을 올리는 정켈 작가는 "악플을 삭제했을 때 '비판을 수용해야 성공한 사람이 된다'며 걱정하듯 나를 압박하는 댓글들이 있는데 악플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때린 놈은 발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상대를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때린 놈은 자기가 때린 것조차 알지 못하고 맞은 놈만 골병 들 수도 있다. 25일 포털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연예 뉴스 댓글의 인격 모독 수준은 공론장 건강성을 해치는 데 이르렀다"며 이달 안에 다음 연예 기사의 댓글 서비스를 폐지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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