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음은 무슨… 꾀부리지 않고 소리만 헐라요

조선일보
입력 2019.10.21 03:00

[제26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신영희]
열한 살부터 60여년 소리꾼 활동
1979년부터 해외 공연 다니면서 한국의 '소리' 전파하는 데 앞장
'쓰리랑 부부' 통해 국악 대중화

쪽찐 머리에 눈송이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살을 에는 추위와 폭설에도 꼿꼿한 자세로 소리를 하던 초로의 여인은 도통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0년도 더 된 한겨울 전남 영암. 당시 소리를 듣던 나선화 전 문화재청장은, 그 눈을 다 맞으면서도 눈 하나 찡그리지 않던 소리꾼을 보며 '저 사람 참 대단하다!' 혀를 찼다. 정작 신영희(77) 명창은 "나는 그게 아니었는디. 시작했으니 끝을 낸 것뿐인디"라며 웃었다.

남색 치마·옥빛 저고리를 입은 신영희 명창이 자택 안방에 놓인 병풍 앞에 앉았다.
남색 치마·옥빛 저고리를 입은 신영희 명창이 자택 안방에 놓인 병풍 앞에 앉았다. 평생 소리를 하면서 쓴 부채가 낡을 때마다 하나씩 떼어서 수놓듯 만든 8폭 병풍이다. "웃으면 주름 생길 텐디" 염려하던 그가, "쫙쫙 펴드리겠습니다!"라는 사진기자 농담에 웃음꽃을 피웠다. /남강호 기자
"소리 하나로 휘적휘적 걸어온 삶"이다. 아버지 신치선 명창은 딸을 소리 곁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운명은 얄궂었다. "학교 갔다 오니까 이웃집 아저씨가 소리를 배우고 있는데 받아내질 못해. 답답해서 방으로 뛰어들어가 '고것도 못허요?' 하면서 '나는 가네 나는 가네' 귀동냥한 '흥보가'를 구성지게 불렀죠." 부친은 고개를 떨궜다. "나중에 알았어요. 남자가 해도 고생인 소리를 여자가 하면 팔자가 셀 거라 노심초사하셨다는 걸." 모친은 달랐다. "당사주를 봤더니, 뜰에서 장구를 둘러메고 사람들 소리하는 그림이 나왔어요. 쪽을 찐 사람들이 전부 날 올려다보고 서 있고." 어머니는 '얘는 소리할 팔자'라며 "세상에 나가서 명창 소리 들으며 쭉쭉 뻗어나가라" 응원했다.

열한 살 때부터 소리를 배웠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의 약값과 오빠의 학비를 책임졌다. 잔칫집까지 30리씩 걸어가기 일쑤. 땅거미가 질 때면 배 끊긴 섬마을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다. 돌아보면 쓴물이 나지만 "이렇게 태어났으니 달게 살았지" 하며 배시시 웃는다.

KBS TV 프로그램 '쓰리랑 부부'를 빼놓을 수 없다. 1988년부터 3년 동안 매주 북을 두드리며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다. 전통음악 하는 사람이 왜 그런 데 나오느냐며 스승인 만정 김소희에게 국악인들 항의가 빗발쳤다. "'안 하면 안 되는가?' 물어보는 스승님께 제가 말씀드렸어요. '이 좋은 예술을 우리끼리만 앉아서 좋은 것이여! 하면 뭐한답니까?'" 스승은 '네 말이 맞다. 너 알아서 해라' 했다. 욕을 '오지게' 먹었다. "그래도 후회 안 해요. 덕분에 국악이 널리 퍼졌잖아요." 1992년 당시 문화재관리국 과장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선생님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허리 굽혔다.

1979년부터 국악 사절단으로 미국·유럽 등 안 간 데 없다. 1989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을 때다. 서양 관객이 "클래식은 사성부(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로 나뉘는데 판소리는 한 사람이 모든 높낮음을 다 한다"고 감탄했다. "소리를 왜 '소리'라 하겠어요? 빗소리, 낙엽소리, 천둥소리 하다못해 새소리, 물소리까지 다 소리라 하잖아요. 판소리는 세상의 온갖 소리를 흉내 내는 예술. 바람은 '우르르르', 보신각 종소리는 '데에에엥~'. 그래서 판소리는 소리이자 노래인 거예요."

'덕은 재주의 주인이요, 재주는 덕의 종이니라'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래서 "샛길도 오솔길도 안 가고 큰길로만" 내달렸다. 거침없는 통성, 크고 시원시원한 발림, 즉흥적으로 판을 휘어잡는 능력은 그만이 가진 깊이다. 1m50cm가 될까 말까 한 몸집에도 지난달까지 만정제 '흥보가'를 완창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이 됐을 것"이라 속삭인 그는 "다만 마지막 꿈인 득음(得音)을 향해 오늘도 어김없이 북채를 쥔다"고 했다. "득음이란 건, 감히 말할 수 없죠. 득음해야 쓰겄다! 하면 생이 끝나니까. 꾀부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원 없이 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득음. 나는 항상 늦게 가는 사람이지만, 그러면서 생을 다하는 거고, 꿈은 이뤄질 거라 봐요."


☞방일영국악상은

방일영·방우영 선생이 설립한 방일영문화재단이 국악 전승과 보급에 공헌한 명인·명창에게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국악상이다. '국악계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1994년 첫 회 수상자인 만정 김소희 선생을 비롯해 이혜구(2회) 박동진(3회) 김천흥(4회) 성경린(5회) 오복녀(6회) 정광수(7회) 정경태(8회) 이은관(9회) 황병기(10회) 묵계월(11회) 이생강(12회) 이은주(13회) 오정숙(14회) 정철호(15회) 이보형(16회) 박송희(17회) 정재국(18회) 성우향(19회) 안숙선(20회) 이춘희(21회) 김영재(22회) 김덕수(23회) 이재숙(24회)에 이어 지난해 음악이론 학자 송방송까지 최고의 국악인들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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