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리나 졸리도 첫눈에 반했다… 한약방 추억 담은 그의 韓紙에

조선일보
입력 2019.10.21 03:00

'집합' 연작으로 유명한 전광영
초기 회화부터 주요작 아우르는 개인전 '챕터1' 12월까지 개최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최근 어느 한국 작가에게 매료됐다. 아들 매덕스가 연세대에 입학하면서 지난 8월 잠시 방한했을 당시, 주한 미국 대사의 초청으로 대사관저에 들렀다가 거기 걸려 있던 전광영(75) 작가의 대표작 '집합'(Aggregation)을 본 것이다. '집합'은 고서(古書)로 삼각·사각의 스티로폼을 옛 한약 봉지처럼 포장한 뒤 화면에 붙인 그의 전매특허 한지(韓紙) 연작이다. 전광영 스튜디오 측은 "졸리 측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며 구매를 염두에 두고 여러 작품 이미지와 자료를 요구해 보내준 상태"라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1976년 초기 회화 'ONT-012'앞에 선 전광영 작가. /조인원 기자
그의 개인전 '전광영―챕터1'이 경기도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서 12월까지 열린다. 작가 인생을 7개 챕터로 나눠 2년간 진행하는 기획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작을 중심으로, 푸른 단색화('ONT-052') 등 1970년대 필라델피아 유학 시절 시도한 회화 및 입체 시리즈 10여 점을 선보인다. 전광영은 "내 20대는 고스란히 미국이었다"며 "숨막히는 도제식 미술 수업에서 벗어나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움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2015년 할리우드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구매해 화제를 낳은 그는 미국이 특히 사랑하는 작가다. 지난 7월까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 개인전을 열었고, 이 전시는 조던 슈니츠 미술관으로 순회해 내년 6월까지 이어진다.

지난 8월 앤젤리나 졸리와 함께 주한 미 대사관저에 걸린 '집합17-FE008' 앞에서 촬영한 것이다.
지난 8월 앤젤리나 졸리와 함께 주한 미 대사관저에 걸린 '집합17-FE008' 앞에서 촬영한 것이다. /전광영 인스타그램
회화 속 선(線)이 단단한 직선에서 점차 활달히 분쇄되는 과정을 거쳐 1990년대 입체작 '집합'으로 나아간다. 어릴적 한약방의 기억에서 탄생한 연작 중 특히 1993년작 '집합 NT047'은 각별하다. 형편 어렵던 시절 매일 한지에 붓글씨를 쓰고 접어 아내와 함께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조형성에만 매몰되기 쉽지만, 그는 문자(文字)를 다룬다. 예를 들어 '논어(論語)'가 적힌 한지 조각이 작가에 의해 재배열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거나 심지어 대립하는 것이다. "한약방 봉지도 한의사가 약재명을 붓으로 적는 순간 정보로 변모한다… 옛 문헌의 한 귀퉁이들은 이제 내 손에서 각기 다른 생명을 지닌 이물적인 정보의 최소 의미로 재탄생한다." 그는 지난해 영국 미술 출판사 템스앤드허드슨이 전 세계 문자 작가를 선정해 출간한 'The Word is Art'에 수록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1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내년 3월 홍콩, 5월 뉴욕, 후년 러시아 모스크바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한국적인 것에 바탕한 현대성"에 세계가 반응한다. 전시작 '집합95-A006'이 가을볕에 잘 마른 태양초처럼 보일 것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