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비판하는 건 음식이지, 셰프가 아니다

조선일보
  • 이용재 음식평론가
입력 2019.10.19 03:00

[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만찬] 11. '라따뚜이'와 음식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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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라따뚜이’는 요리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생쥐 레미가 프로방스 지방의 소박한 채소 스튜 라타투이를 고급 요리로 재해석해 악독한 음식평론가마저 감동시키고 셰프가 된다는 단순한 줄거리 속에 레스토랑 주방의 체계와 위계질서, 음식 저널리즘 등 다채로운 내용을 솜씨 좋게 채워 넣었다. /영화 캡처
"가장 좋아하는 음식 영화는 무엇인가요?" 팟캐스트에 출연했다가 질문을 받고 잠깐 당황했다. 음식이 소재인 영화를 즐겨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음식평론가 아닌가. 볼 만큼은 보았는데 바로 떠오르는 게 한 편도 없었다. 그렇게 당황하는 사이 기억의 어둠을 헤치고 파란 생쥐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만화영화 '라따뚜이'의 주인공이자 요리사 레미(목소리 연기 패튼 오스월트)였다.

라따뚜이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절대 미각을 지닌 요리 능력자 생쥐가 무능력한 인간을 조종해 악독한 음식평론가마저 감동시키고 숙원이었던 셰프가 된다'고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한 줄 속에 실로 헤아리기 어려운 세부 사항이 빼곡하면서도 유기적으로 들어차 있다. 레스토랑 주방의 짜임새부터 평론을 비롯한 음식 저널리즘의 생리까지 이루 다 늘어놓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여러 번 보고 심지어 대학 강의 교재로도 썼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세부 사항은 역시 주방의 짜임새와 이를 통해 드러나는 위계질서이다. 양식은 기본적으로 한 접시를 이루는 요소를 따로 조리한 다음 조립하듯 한데 짜 맞추는 방식으로 요리에 접근한다. 각각 자기가 맡은 요소를 반복 조리하는 일종의 분업화로, 자동차 공장의 조립 공정(assembly line)과 흡사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의 동네 햄버거 가게였던 맥도널드도 포드 자동차의 조립 공정에서 힌트를 얻은 레이 크록의 분업화를 통해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았다.

'양송이 소스를 끼얹은 소고기 채끝 스테이크와 구운 아스파라거스'라는 요리가 있다고 가정하자. 일단 씻고 다듬는 수준의 식재료 기본 손질만 전담하는 요리사(혹은 견습생)가 양송이나 아스파라거스 등의 식재료를 준비해 놓는다. 그럼 레스토랑 영업 시작 전에 소스, 스테이크(손질해 들어오거나 레스토랑의 푸주한이 따로 있다), 아스파라거스를 맡은 요리사가 자신에게 편한 방식과 상태로 손질을 마친 뒤 대기한다. 이윽고 레스토랑이 문을 열고 주문이 들어오면 셰프가 받아 전담 요리사에게 전달하고 요리를 지시한다. 이렇게 셰프는 요리보다 전체 과정을 굽어보는 지휘자의 역할로, 각각의 요소가 요리되어 접시에 담긴 상태까지 최종 점검해 홀로 내보낸다.

레스토랑의 공간 및 위계질서 또한 이런 속성을 반영해 이루어진다. 일단 공간은 불 없이 만드는 차가운 음식부터 시작해 소스, 채소, 고기, 그리고 디저트를 만드는 일종의 '지부'가 주방 전체의 공간에서 지분을 차지하는 한편, 요리사는 그 안에서 단계를 밟아 수련하며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가장 쉬운 지부의 막내에서 시작해 지부장이 된 후 다음 단계의 지부로 발령을 받아 또 같은 과정을 거치기를 되풀이해 결국 셰프로 승진하는 것이다. 물론 레미 같은 천재가 현실의 요리 세계에도 존재한다. 고속 승진을 통해 삼십 대 초반이면 자기 주방을 꾸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부류마저도 감자 깎기 같은 기본의 기본은 반드시 거친다.

다음은 평론가와 요리 저널리즘의 세계이다. 안톤 이고(목소리 연기 피터 오툴)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채소 스튜 라타투이에 감복하는 줄거리는 감동적이지만, 효과를 내기 위해 틀에 박힌 전형 혹은 선입견에 너무 의존했다. 혹평을 무기 삼아 레스토랑의 폐업에 희열을 느끼는 음식평론가가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라면 개인적인 감정을 투사하는 셈이니 직업인으로는 실격이다. 게다가 평론가에게는 암행이 기본이라 자신의 정체나 방문 시기 등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먹고 평가해야 한다. 공정성 논란에 시달리는 미쉐린 가이드마저도 원칙적으로는 평가인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 '내일 올 테니까 제대로 된 음식을 준비해 놓으시지!'와 같은 태도로 접근하는 평론가라면 펜, 아니 키보드를 빼앗아 마땅하다.

물론 평론가가 암행을 기본으로 삼더라도 보안이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레스토랑은 대체로 평론가의 존재 파악 및 대처를 위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뉴욕타임스의 경우 음식비평가가 바뀔 때마다 주방 메모판에 사진이 붙는다고 한다. 방문 자체를 예상 못 했더라도 일단 잘 먹여 보내면 되므로 빠르게 대응하고자 가장 먼저 제보하는 직원에게 휴가나 포상금도 건다. 물론 암행이 성공했든 아니든 방문 평가를 통한 점수 조정은 큰일이다. 영화 속 셰프 구스토의 경우처럼 별이 줄기라도 하면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바로 그런 논란의 대상이 라따뚜이 제작에 관여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토머스 켈러의 나파밸리 레스토랑 '프렌치론드리(French Laundry)'에서 견습을 했다. 켈러는 미국 레스토랑계의 거장이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젊은 시절 참담한 실패를 겪으며 자신의 요리 세계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지만 프렌치론드리를 필두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해 뉴욕 맨해튼의 '퍼 세(Per Se)'와 더불어 미국에서 최초로 두 레스토랑을 통해 별 세 개씩을 받은 최초의 미국인 셰프가 되었다. 원래 소박한 토마토 소스 바탕 채소 스튜인 라타투이(ratatouille)의 영화 속 버전, 즉 채소를 얇게 썰어 켜켜이 담아 구운 '콩피 비얄디(confit biyaldi)를 만든 장본인도 켈러이다. 대가인 그조차도 2016년 뉴욕타임스의 음식 비평가 피트 웰스에게 '구태의연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더불어 별을 하나도 아닌 두 개나 줄여(원래 만점인 별 넷을 유지했었다) 당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은 나도 평론가의 입장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종종 겪었다. 고소 검토 중이라는 등, 평가 뒤에 종종 딸려 오는 식당들이나 미식가들의 격한 반응이 몇 년 전 한 음식 잡지에서 국내 최초로 레스토랑 비평을 시도할 때 정점에 이르렀다. 레스토랑을 먼저 찾아가 '내일 올 테니 두고 보겠다'고 스스로를 드러내며 압박이라도 가했다면 모를까, 그저 조용히 먹고 와서 평가했을 뿐인데 레스토랑계의 붕괴라도 원하는 냉혈한처럼 인식되어 당황스러웠다. 안톤 이고에게 그랬듯 음식은 굉장히 높은 비율로 감정에 호소하지만 비평은 평가의 이성적인 구현이다. 평론가는 음식과 레스토랑을 비판할 뿐, 셰프나 손님을 비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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