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아기예수상, 학대받는 아이들의 수호자 되다

입력 2019.10.18 03:00

[동유럽 가톨릭 성지를 가다] [3] 프라하 아기예수 성당
연간 45만명이 찾는 체코 聖地… 동구권의 무너진 신앙 되살려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방문해 해체된 가정 아이들 위해 기도

해골성당선 삶의 유한성 묵상도

체코는 한때 종교적 열정이 분출하던 신앙의 화산지대였다. 종교개혁가 얀 후스(1369?~1415)의 고향이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서부)였다. 훗날 그의 파문과 처형은 이 나라를 후스 전쟁과 30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믿음을 두고 피를 흘릴 만큼 뜨겁게 이어져 오던 신심은 1945년 공산 정권이 들어서며 차갑게 식었다. 공산화 이전 80%에 이르던 종교인 비율이 1969년 55%로 격감했고, 민주화 혁명 한 해 전인 1988년엔 30%까지 추락했다. 체코 정부는 교회를 국가에 종속시키고 재산을 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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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체 의식을 마친 신부가 아기예수 제단에 성체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45만명이 프라하 아기예수 성당을 찾아 기도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지난달 2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순례단이 방문한 프라하 아기예수 성당에서 그 고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많은 사람이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영성체 의식을 마친 신부가 특이하게도 신자석으로 내려오더니 성당 오른편 중간쯤에 마련된 아기예수 제단까지 걸어가 성체를 안치했다. 널따란 중앙 제단과 달리, 폭 5m도 안 되는 아기예수 제단 앞은 무릎 꿇을 공간이 넉넉지 않아 기도하려면 줄을 서야 한다. 나치와 공산 정권 치하에서 50년간 성당이 방치됐고, 아기예수 경배도 끊어졌던 시절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공산 정권에 빼앗겼던 아기예수 성당에 과거 이 성당을 관할했던 가르멜 수도회가 1993년 복귀했다. 아나스타시오 로게로 주임신부는 그해 부임해 신심 회복을 향한 체코 가톨릭 교회의 노력을 목격한 산증인이다. 그는 "26년 전 이곳에 왔을 때 성당은 사실상 버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해마다 45만명이 키 45㎝의 목각 아기예수상(像)을 보기 위해 이 성당을 찾는다. 크고 거룩한 성자 예수가 아니라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온 구세주의 겸손과 사랑을 배우기 위한 순례다.

체코
아기예수상은 축일과 전례력 주기에 따라 다양한 색의 망토를 걸친다. 파벨 폴라 가르멜 수도원장은 "가르멜 수도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데, 옷을 입히는 의식은 예수의 참된 인성을 강조하자는 뜻"이라며 "한국 순례자가 기증한 한복도 성당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라하의 아기예수는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다. 1556년 스페인 공작 가문 여성이 보헤미아 귀족 집안과 결혼하면서 가져온 것을 이후 그녀의 딸이 가르멜 수도회에 기증했다. 1631년 프라하에 침입한 색슨족이 수도원을 약탈했을 때 두 팔이 부러지고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다. 피신에서 돌아온 수사들에게 발견된 아기예수는 "내 팔을 찾아 주세요. 나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프라하 아기예수는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수호자다. 2009년 이 성당을 찾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아기예수 앞에서 학대의 희생자가 됐거나 해체된 가정의 어린이를 위해 기도했다. 가르멜 수도회는 아기예수가 약속한 평화를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내전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적도의 내륙 국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이탈리아·인도·프랑스 출신 수도자들을 가르멜 수도회 이름으로 파견하고 있다.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돌보고 농사도 함께 짓는다. 어린이 에이즈 퇴치 활동도 병행한다. 프라하 아기예수 성당도 지난해 기부금을 모아 학교 두 곳을 지어 선물했다.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면 한때 은광(銀鑛)으로 번성했던 도시 쿠트나호라에 도착한다. 지금은 쇠락한 이 도시가 번영의 덧없음을 증명한다면, 이 도시에 있는 세들레츠 해골성당은 삶의 유한함을 묵상케 한다. 13세기 후반, 체코의 한 수도원장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흙 한 줌을 가져와 뿌렸다는 전설이 있다. 이 소문이 퍼지며 세들레츠 성당 묘지는 유럽인들이 묻히고 싶어 하는 사후 안식처가 됐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죽어가던 3만명이 삶의 종착지로 이곳을 택했고, 15세기 후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1만명도 이곳에 묻혔다. 적어도 4만명, 최대 7만명이 이 성당에 잠들어 있다.

성당 지하 납골당에 들어가니 놀라운 장면이 순례자를 압도했다. 온 사방 벽이 사람의 뼈로 장식됐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까지 해골과 기타 인골이었다. 그 모든 뼈가 일제히 외치는 듯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너희는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그 환청은 질문이 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유한한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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