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WTO 양자협의 한 번 더 하기로…일본은 종전 입장 반복

입력 2019.10.12 06:56 | 수정 2019.10.12 07:10

한국과 일본이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단행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 대한(對韓) 수출 규제와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에 대한 양자 협의를 추가로 진행한다. 두 나라는 지난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정식 양자 협의를 가졌는 데, 2차 협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통상 WTO 제소 전 양자 협의는 한 차례에 그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WTO 무역 분쟁 첫 단 계인 당사국 간 양자 협의를 열었다. WTO 규정은 무역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선 양자협의를 하도록 돼 있다. 먼저 당사자 간에 협의를 한 뒤, 타협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WTO가 일종의 ‘재판정’인 분쟁심판 패널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정해관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이, 일본은 구로다 준이치로(黑田淳一郞) 경제산업성 통상기구부장이 각각 대표로 참석했다.


지난 7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 회의장에서 열린 일반이사회를 앞두고 일본 대표단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로 옆에 한국 대표단이 앉아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7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 회의장에서 열린 일반이사회를 앞두고 일본 대표단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로 옆에 한국 대표단이 앉아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협의는 6시간 가량 진행되었으나, 두 나라는 각각 상대방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정 협력관은 협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일본과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2차 양자 협의 일정을 외교 채널을 통해서 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추가 협의는 한국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일본은 첫 협의에서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서로 평행선을 달렸다. 정 협력관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3개 품목의 수출과 그에 따른 기술 이전을 포괄허가제에서 개별허가제로 수출 제한 조치를 한 데 대해 WTO 협정 위배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측에 왜 추가 협의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추가 협의를 해서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거나 예단하기 어렵지만, 재판 절차로 가기보다는 조기에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면 그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지지통신(時事通信)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수출 관리의 재검토는 WTO 협정에 들어맞는(정합적인) 조치"라며 이전과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新聞)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 협상단은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수출 관리 체제 부적절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이 자국의 조치를 WTO에 제소한 것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다 "부적절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로다 부장은 한국 측에 앞서 별도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종래 입장을 주장했다"면서 "한국이 정치적 동기로 WTO에 이 의제를 가지고 온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한국의 질문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WTO 제소는 먼저 사전 단계로 양자 협의를 거치도록 되어있다. 통상 문제에서 한 쪽이 문제를 제기한 사안에 대해 먼저 ‘합의’를 하도록 노력한 뒤, 일종의 ‘재판정’인 WTO 심리를 받으라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9월 11일 WTO 제소와 함께 일본에 양자 협의 요청서를 발송했다. 피소국이 양자 협의 요청서를 수령한 날로부터 10일 이내 회신을 해야 하고, 양자 협의에 응할 경우 원칙적으로 요청서 발송 후 30일 이내 개시하도록 돼 있다. 일본은 회신 기한을 하루 남겨 둔 9월 20일 양자 협의에 응하겠다고 답했고, 협의 날짜도 요청서 발송 후 30일이 지난 11일로 정했다.

이번 양자협의에서 다시 ‘추가 협의’를 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WTO 분쟁에서 양자 협의는 한 차례 정도만 진행한다. 하지만 2차 협의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 측에서 충분히 협의에 응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한국의 요구에 응한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新聞)에 따르면 7월 4일 이후 일본 정부가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등 개별 허가제로 전환된 3개 품목 가운데 실제 허가를 내준 것은 10월 4일 현재 7건에 불과하다. 포토레지스트 3건, 고순도 불화수소 3건, 불화폴리이미드 1건 등이다. 포토레지스트는 규제 한 달여만인 8월 7일, 고순도 불화수소는 거의 두 달 만인 8월 말, 불화폴리이미드는 9월 중순 각각 첫 대한 수출 허가를 내줬다. 고순도 불화수소 가운데 반도체용 불산액은 단 한 건의 수출 허가도 발급되지 않는 상황이다.

산업부는 지난 1일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허가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유엔 무기금수국가에 적용되는 9종의 서류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데다, 서류를 제출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의 서류보완을 지시하는 방식으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4대 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보다도 더 차별적으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일본 정부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의 국가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본 업체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모리타화학공업(森田化学工業)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에 "9월 중에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제 다시 10월 중에 받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매출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 한시라도 재개해 달라"고 말했다. 또다른 불화수소 업체 스텔라케미파도 "10월 4일까지 수출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며 "계속 심사 중에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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