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형제 죽어나간 전쟁통에 조선의 '민족' 의식 생겨"

조선일보
입력 2019.10.12 03:00

'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김자현 지음|윌리엄 하부시·김지수 편집|주채영 옮김|너머북스|286쪽|1만9000원

1592년 일본이 침략한 임진왜란에 대응하면서 조선 사람에게 '민족'이란 의식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를 지낸 저자 김자현(1940~2011) 교수는 미국의 한국학계를 이끄는 대표적 학자. 8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남편인 수학자 윌리엄 하부시 일리노이대 교수에게 컴퓨터에 들어 있는 미완성 원고를 부탁했다. 남편은 아내의 제자인 김지수 조지워싱턴대 교수 등과 함께 유고를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복잡하게 논증하지만 주장은 명료하다. 부모·형제가 살육당하는 절박한 위기에서 조선 사람들은 타민족과 구별되는 자기 민족에 대한 인식을 키웠으며, 민족 정체성은 전후 조선 조정의 전쟁 기념사업 등을 통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단군 이래 한 민족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견해나 민족이란 개념은 개항 이후 들어온 근대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통설에 도전하는 주장이다.

저자는 임진왜란 중 영남과 호남 등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대장은 의병 참여를 권유하는 격문 등에서 국토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자고 호소하며 '민족 담론'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전쟁 중 소통의 문자로 주목받은 한글이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강화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조선 조정은 기존 공식 문서에 한자를 사용하던 관행을 깨고 한글로 쓴 문서를 발송하고 게시했다. 전쟁 이후 한글은 다시 하위 언어로 돌아간 듯 보였지만, 이전과는 달리 기층문화 공간에서 모국어로서의 민족 담론을 형성하고 대안적인 공간을 창출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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