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머릿돌·벽보… 19~21세기 뒤엉킨 서울의 진짜 민낯

조선일보
입력 2019.10.12 03:00

'갈등 도시'
갈등 도시|김시덕 지음|열린책들|512쪽|2만원

지금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 가구 단지에 1960년대 중반 한센인 정착촌인 헌인 마을이 조성됐다. 하지만 이 마을에 정착한 한센 병력자의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이 인근 초등학교에서 등교를 거부당했다. 한센병과 무관한데도 차별받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홍종철 문교부 장관은 자신의 딸을 이 초등학교에 전학시킬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다른 학부모들이 자녀를 등교시키지 않는 등 반발이 계속되자, 결국 마을에서 수십 ㎞ 떨어진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이 일대를 둘러본 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집 문턱에서 멈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누비고 다닌 답사의 결과물이다. 유홍준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서울판 같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조선 시대 국왕·양반의 공간, 독립운동, 친일 인사와 관련된 공간, 건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빌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발 바람이 거센 서울 을지로 일대의 간판.
개발 바람이 거센 서울 을지로 일대의 간판. /열린책들
대신 저자는 간판·머릿돌·마을 비석·공덕비·벽보·플래카드 등 일상적 풍경에 주목한다. 19~21세기에 조성된 도시 공간과 건물이 복잡하게 뒤엉킨 모습이야말로 서울의 참된 민낯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불광역과 녹번역 구간인 의주로 양옆에는 1970년대 건물의 머릿돌이 많은 반면, 을지로·영등포·남대문 일대에는 1950년대 건물 머릿돌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날카로운 관찰력과 부지런한 발품에서 비롯한 구절이 적지 않다. 책을 읽으면 그의 답사에 동행한 듯한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