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멀쩡한 얼굴을 '생얼'이라 부르는 나라

조선일보
  • 우석훈 경제학자
입력 2019.10.12 03:00

탈코르셋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책 '88만원 세대'를 준비하면서 10대들의 소비 패턴을 보기 위해 화장품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기초화장은 중3, 색조화장은 고3 정도에 시작하는 것 같았다. 10년 후 같은 분석을 했다. 놀랐다. '키즈 메이크업 키트'와 함께, 이제 화장은 어린이집부터 시작한다. 이민경의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에서 보여주는 수치는 놀랍다. "2017년 영유아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00억원 규모였고 립스틱 판매량은 전해 대비 549% 증가했다." 화장을 몇 살에 시작하는가를 따지는 게 이제는 의미 없다. 어린이 화장품 매출은 연간 360% 성장하고 있다.

뷰티 산업이 이렇게 성장하는 동안, 여기에 대한 반작용이 생기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2018년 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번져나간 것이 '탈코르셋 운동'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개미허리로 유명해진 비비언 리의 그 코르셋이 상징물이다. 발의 변형을 만드는 힐, 건강을 위험하게 만드는 체중 조절, 일상적인 활동도 힘들게 만드는 옷, 이런 일련의 일들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로드숍'이 유행하던 2010년에 화장의 세계로 들어온 '90년대생'은 10대 후반에 대해서 온도감이 좀 다른 것 같다.

'탈코르셋'
어린이집에서 눈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여자 아이들은 눈이 작다, 예쁘다, 이렇게 서술한 반면 남자 아이들은 "0.3"과 같은 시력으로 대답을 했다는 얘기도 놀랍다. 한국에서 가부장제는 점점 완화되는데, 뷰티 산업이 더 커지면서 어린이집 단계에서의 성별 구분은 더 강화되고 있다.

책에 나오는 인터뷰 한 장면에서 나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남자가 돈을 잘 벌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나온 대답이다. "제가 저를 먹여 살리는 게 더 좋은데요. 남자가 나한테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건 결국 시중을 들라는 거예요. 돈보다 제 존엄이 중요해요." 옷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힘들게 살다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어느 여성의 답변이다. 멀쩡한 얼굴을 '생얼'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생겨나는 슬픈 현상이다. '82년생'과는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어나가는 2000년생 여성들의 새로운 흐름, 탈코르셋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무슨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지 정도는 독자 여러분이 아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는 어린이들에게 철저히 막는 나라에서 화장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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