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조커와 조국, 그 거대한 농담

조선일보
입력 2019.10.12 03:15

정치인의 거짓말과 선동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
영화 속 '조커'가 '조국'을 만나면 어떤 '농담'을 던질까

김윤덕 문화부장
김윤덕 문화부장
한국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조커'를 보고 싱거운 생각을 했다. 저 영화가 좀 더 일찍 만들어져 지난 5월 칸영화제에 출품됐다면 봉준호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계급 갈등을 극단적으로 풍자한 핏빛 우화란 점에서 두 영화는 닮았지만 '조커'는 '기생충'보다 뜨겁고, 잔혹하지만 슬프다. 게다가 갈비뼈로도 연기하는 '미친' 배우가 등장해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폭력을 미화하고 계급 갈등을 부추기며 모방 범죄를 야기한다는 지적은 영화를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조커가 던진 '거대한 농담'에 일반인들이 남긴 '한 줄 평'은 어느 평론가보다 예리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한 인간의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을 때 그 손을 잡아준 건 광기(狂氣)였다' '착하게 사는 건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포기하고 내려갈 땐 너무나 빠르고 즐겁다' '무심코 터뜨린 웃음이 누군가에겐 씻지 못할 상처가 된다'….

영화는 정치적으로도 소비되기 시작했다. 하필 첫 글자가 같은 이유로 요즘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조국' 장관이 희대의 악당 '조커'로 패러디된다. 살인을 앞두고 계단을 춤추며 내려오는 조커를 조 장관 얼굴로 바꾼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물론 동의할 수 없다. 조 장관은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보다 '잘생겼다'.

조 장관과 대비할 영화 속 인물을 굳이 고른다면 토머스 웨인 혹은 머레이 프랭클린 쪽이 가깝다. 시장(市長) 후보로 나선 웨인은 쓰레기 더미와 쥐 떼로부터 시민을 구할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라고 외치지만, 서민들 고통은 나 몰라라 극장에서 턱시도 입고 찰리 채플린 코미디를 보며 폭소를 터뜨리는 강남 좌파식 기득권이다. 스타 코미디언 머레이는 더욱 이중적이다. 누구에게나 한없이 인자하고 위트 넘치는 아버지상으로 존경받지만, 실은 남의 약점을 쥐고 웃음으로 조롱하는 잔인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타인에 대한 배려, 존중은 없다. 그 실체를 마주한 조커는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였던 그에게 결국 총을 겨눈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계급 갈등이 격화된 뉴욕이지만,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는 점에서 오늘 대한민국과 닮아 있다.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알 수 없다고 자괴하는 사람들이 늘고, 정의와 동의어라던 촛불이 권력을 잡았으나 제2, 제3의 조커가 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을 만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개탄이 넘친다. 혼돈의 세상에서 고통받는 건 서민들뿐이다. 경제는 길을 잃은 지 오래인데 정치 지도자들은 나라를 두 동강 내기 바쁘다. 나라가 망하면 금수저·은수저들은 이민이라도 갈 수 있지만 흙수저들은 오갈 데가 없다. 정의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엘리트들은 돈과 학벌을 대물림하느라 혈안 돼 있을 때, 맨주먹 맨정신으로는 설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을 때 광기로 무장한 '조커들'은 탄생한다.

영화를 만든 토드 필립스 감독은 선과 악을 가르는 잣대는 '공감 능력'이라고 했다. 타인과 타인의 불행을 공감하지 않으려는 것이 악(惡)이란 얘기다. 실제로 우리는 권력 쥔 자들의 낙제에 가까운 공감력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왔는지 보아왔다. 불행히도 현 정권은 그 절정에 달해 있다.

푸른 눈썹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조커가 조국 장관을 만나면 어떤 '농담'을 건넸을까 상상해본다. 그냥 물러나면 안 돼요? 딸 생일에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못 먹은 게 그렇게 억울한가요? 당신들에겐 왜 최소한의 예의가 없나요?

검찰 개혁은 나만 할 수 있다는 조 장관의 실없는 농담도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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