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요새 진해해군기지가 위협받고 있다

입력 2019.10.13 06:00

[주간조선]

진해해군기지의 유일한 길목인 거가대교 가덕해저터널 협수로. 가장 오른쪽 섬이 지난 9월 개방된 저도다. photo 이동훈 기자
진해해군기지의 유일한 길목인 거가대교 가덕해저터널 협수로. 가장 오른쪽 섬이 지난 9월 개방된 저도다. photo 이동훈 기자
북한 잠수함 전력이 나날이 강화되는 가운데 진해 잠수함 기지 길목에 자리한 저도의 민간 개방 등 진해해군기지의 입지적 장점을 훼손하는 정책 결정이 계속되고 있어 군 일각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진해해군기지 보안문제가 최초로 제기된 것은 2008년 마창대교 개통 때부터다.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과 창원을 연결하는 마창대교는 마산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데, 진해해군기지가 굽어다 보이는 곳에 지어졌다. 선박 통행을 위해 수면에서 상판까지의 높이가 64m로 국내에서 세 번째로 높아 교량 위에서 망원렌즈를 사용하면 진해해군기지 내 조망이 가능하다.

2010년 거가대교 개통 때는 유사시 진해해군기지가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해군 내에서 제기됐다. 거가대교는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도를 연결하는 총 연장 8.2㎞에 달하는 교량터널로, 외해(남해)에서 진해해군기지로 들어가는 수로 위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유사시 적의 폭격 등으로 거가대교가 끊어지면 진해만은 언제든 항구가 봉쇄될 위험에 놓여 있다. 다리가 끊어져도 해군 함정이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거가대교 구간 중 해저 침매터널이 놓인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의 폭 3㎞ 남짓한 협수로가 전부다.

진해해군기지의 유일한 출입구라고 할 수 있는 3㎞의 협수로는 국내 최대 수출입항만인 부산신항과 항로를 공유하고 있다. 창원국가산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출입 화물을 처리하는 마산항과도 항로를 공유한다. 거제도 고현항에 있는 삼성중공업을 비롯 진해 STX조선, 통영 성동조선을 오가는 선박도 이 수로를 공유한다. 폭 3㎞의 협수로에 1만~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박들이 오가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다. 거가대교 안쪽의 진해 제덕만(灣) 신항 배후부지에는 오는 2040년까지 기존 신항과 맞먹는 규모의 제2 신항도 조성될 예정이다.

진해만에는 통영과 거제 쪽으로도 한 가닥 수로가 열려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거제대교(총연장 740m)와 신거제대교(총연장 940m)로 막혀 있어 어선을 제외한 해군 함정이나 잠수함이 드나들기에는 부적합하다. 진해만에서 동쪽인 부산 쪽으로 통하는 수로는 부산신항 다목적부두 조성과 함께 이미 틀어막힌 상태다. 결과적으로 유사시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잠수함을 비롯한 해군 함정들이 크고 작은 선박들이 드나드는 항만과 좁고 가는 수로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 해군은 유사시 군함과 상선을 일거에 차단할 수 있는 진해만 해상교통로 봉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17일부터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진해해군기지 길목에 있는 군사보호구역이었던 저도를 민간에 개방하는 결정까지 내려졌다. 이에 따라 해군 작전상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진 상태다. 해군은 ‘대선공약’이란 청와대의 위세에 눌려 이번에도 제대로 된 반대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했다.

거제도 출신 김영삼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추진한 ‘거가대교’ 노선 선정 당시에도 해군은 작전상의 이유로 ‘절대불가’를 외쳤으나, 부산 가덕도에서 대죽도에 이르는 일부 구간을 해저 침매터널로 바꾸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당시 전략적 요충지인 저도 위를 거가대교가 통과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으나, “해상교량 대신 저도 육상을 통과하면 건설비 절감이 가능하다”는 경제논리에 굴복해 결국 거가대교의 저도 육상 통과도 용인하고 말았다.

1920년대 일본군이 군사시설을 설치한 저도의 경우, 군 출신인 박정희 정부 때인 1975년에는 군사작전 편의상 행정관할권을 일치시키기 위해 옛 진해시(현 창원시 진해구)에 편입시킨 적도 있었다. 저도가 다시 거제도 소속이 된 것은 거제도 장목면 출신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한 1993년 이후부터다. 저도 민간 개방 결정을 내린 문재인 대통령 역시 거제도 거제면 출신이다.


진해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비록 진해가 ‘천혜의 잠수함 요새’라지만 천혜의 요새가 무너진 예는 얼마든지 있다. 1904년 러일전쟁 개전 초 ‘뤼순(旅順)해전’ 때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기습봉쇄 전략으로 러시아 뤼순함대를 뤼순항 안에 가두어버렸다. 사세보(佐世保)항에서 출항한 일본 연합함대는 뤼순항으로 은밀히 접근한 후 자국 함선을 자침시켜 항구 입구를 막고, 기뢰를 살포해 뤼순함대를 꽁꽁 묶었다. 스테판 마카로프 제독이 이끄는 뤼순함대가 제대로 힘조차 못 쓰고 일본 연합함대에 격멸당한 것은 ‘요새함대주의’에 의존해 일본의 봉쇄에 소극 대응한 측면이 크다. 마카로프 제독 역시 뤼순항 앞에서 일본 해군이 설치한 기뢰 폭발로 수장됐다.

진해해군기지를 조성한 사람도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다. 뤼순해전 직후 러시아 발틱함대와 추가로 일전을 준비하던 일본은 마산포의 외항인 진해를 해군기지로 조성했다. 구한말인 1898년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租界)가 들어선 마산포는 일찍부터 러시아가 눈독을 들이고 1900년 영사관을 개설한 터라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이후 진해만에 웅크린 도고 헤이하치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끄는 발틱함대를 쓰시마섬 인근에서 만나 동해 바다에 수장시키면서 러일전쟁의 최종 승패를 결정지었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쓰시마해전’이 진해에서 비롯된 셈이다.

진해가 북한 해군이 접근하기에 먼 거리에 있고, 거가대교 바깥 수역에서부터 우리 해군과 해병대가 경계 근무를 서기 때문에 북한 해군력만으로 진해만 봉쇄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탐지가 어려운 반(半)잠수정, 어선으로 가장한 공작선, 인간어뢰 등을 이용한 민간상선 공격 등의 방식으로 협수로를 틀어막는 예기치 못한 공격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진해만 인근 부산 다대포(1983년)를 비롯 남해(1980년), 여수(1998년) 등지에서 북한의 반잠수정 등 괴선박이 출몰한 사례를 봤을 때 진해 역시 안전지대로 속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지역에서는 우리 잠수함의 움직임이 지금도 종종 노출된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잠수함은 협수로와 얕은 수심 등으로 인해 거가대교까지는 수상으로 항해한 뒤, 거가대교를 빠져나간 후부터 수중 잠항을 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잠수함이 거가대교 협수로를 통과할 때 안전을 위해 수상항해를 하고 거가대교를 빠져나오면서부터 잠항을 하는데 이때 움직임이 관측될 가능성이 있다”며 “저도 개방 시 거제도가 보이는 서쪽은 개방해도 가덕도가 보이는 동쪽은 개방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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