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 왕'이 일군 숲, 100년 가꾼 대숲… 사유지 비밀의 숲이 열린다

입력 2019.10.12 03:00

[아무튼, 주말] 핫 플레이스 된 사유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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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부산 ‘아홉산 숲’의 맹종죽 숲은 두 군데다. ‘제1 대숲’에 들어서면 동화 속 소인국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경주 ‘화랑의 언덕’의 ‘명상의 바위’는 경주의 새로운 ‘인생 사진’ 명소가 됐다./ 박근희 기자
인터넷 검색창에 '사유지'라고 치면 '불법 주차'가 연관어로 뜬다. 사유지(私有地)는 그렇게 금지되거나 닫혀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으로 여행을 간다고?

사유지도 때로는 공유지가 된다. '출입 금지' 팻말을 떼고 울타리를 개방한다. 사유지였다가 최근에 일반인에게 문을 열어준 숲 목록을 뽑아보았다. 9대째 지켜온 '아홉산 숲'부터 BTS(방탄소년단)가 다녀간 경기 양평 '서후리 숲', "일부러 찾아간다"는 경북 경주 '화랑의 언덕', 지난해 3월 개방한 경남 진해 '보타닉뮤지엄'까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뜬 사유지로 여행을 떠났다.

9대째 지켜온 '아홉산 숲' 재개장

부산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 숲은 사연이 많다. '기장군 아홉산 자락 한집안에서 9대째 300년이 넘게 가꾸고 지켜온 전통 비밀의 숲'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부른다. 3년 전 개방 후 하루 평균 탐방객 1000명이 찾으면서 주변 민원이 발생해 폐쇄와 개방을 되풀이해야 했다. 규제와 민원의 소음과 관계없이 300년 지켜온 숲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산주(山主) 남평 문씨 일가의 종택, '고사리(하찮은 풀)도 눈여겨본다'는 의미가 담긴 숲 초입의 한옥 관미헌(觀薇軒), 문씨 가족 묘원을 차례로 지나면 맹종죽(대나무) 숲인 '제1 대숲'이 나온다. 전언에 따르면 100여년 전 중국에서 들여온 맹종죽을 처음 심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 마을의 굿터 역할을 했다.

중국 무림 영화 속 배경 같은 이곳은 영화 '군도'(2014) '협녀, 칼의 기억'(2015),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2016) '녹두꽃'(2019) 촬영지로 유명하다. 옆에는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다. 아홉산 숲에는 보호수로 지정받은 나무만 116그루다. 개잎갈나무와 맹종죽 사이 바람의 길을 따라가면 위쪽으로는 참나무 군락과 제2 대숲인 '평지대밭'이 나온다. 특히 이곳 평지대밭은 3만3000㎡(1만여 평)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맹종죽 숲으로 알려졌다. 파란 가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대숲 샛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되는 기분이다. 금강소나무, 제1 대숲, 제2 대숲으로 나오는 코스는 오르막 내리막길을 반복한다. 한 바퀴 돌면 약 40분 정도 걸린다. 찾는 이를 배려한 숲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잘 지켜온 숲이기에 편의 시설이나 쉬어갈 만한 의자는 많지 않다.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료 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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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서후리 숲’의 잔디밭 /박근희 기자
BTS도 다녀간 양평 '서후리 숲'

아홉산 숲이 있는 그대로 지켜낸 숲이라면 양평 서종면 서후리 숲은 오진리(37) 서후리숲 대표가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적당히, 과하지 않게 잘 가꾼 숲'이다. 방탄소년단이 다녀간 여행지, 일명 'BTS 투어 여행지'로 소문났다. 방탄소년단 굿즈 중 하나인 '2019년 BTS 시즌그리팅' 달력 사진을 이곳에서 찍었다. 탐방로 구간에는 방탄소년단 사진을 전시해두었다. 2013년 6월부터 일반 개방해 이 외에도 영화나 CF 촬영지로 종종 등장했다.

다양한 수종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 으뜸은 자작나무 군락지다.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 못지않은 풍경을 품고 있다. 자작나무숲 속에 있을 때보다 숲을 지나 은행나무숲으로 가는 길, '뒤를 돌아보세요'라고 적힌 푯말에서 돌아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자작나무숲을 찾은 백용순(63)씨는 "서울 가까이에 이런 자작나무숲이 있다는 걸 몰랐다"며 "초등학교 2학년 외손자와 함께 3대가 올라왔는데 산행 초보에게도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고 했다. 자작나무숲을 지나면 은행나무숲, 메타세쿼이아숲, 단풍나무숲 등을 차례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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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서후리 숲’의 자작나무 숲.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오 대표는 "양평 잣나무가 많은 숲이었는데 2010년 태풍 곤파스 이후 잣나무가 많이 훼손돼 메타세쿼이아와 구상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그때 식재한 묘목들이 이제는 숲을 이뤘다.

A 코스와 B 코스의 탐방로 중 산책을 할 목적이거나 산행 초보라면 B 코스를 선택하는 게 무난하다. 성인 걸음으로 B코스 완주 소요 시간은 30~40분. 계곡 옆길을 따라 이어진 A 코스는 경사가 있어 등산의 묘미를 맛본다. 자작나무숲에 가려면 A코스를 택해야한다. 숲길 초입의 너른 잔디밭은 아이들이 뛰놀기 좋다. 조용한 마을 안쪽 산자락에 있어 1차로 마을 길을 따라 진입해야 한다. 특히 초보 운전자라면 차가 많은 주말보다 평일에 찾기를 권한다. 매주 수요일 휴무이며 5시 입장 마감한다. 입장료는 일반 7000원, 경로·학생·장애인 6000원, 8세 미만과 서종군민은 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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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경주 ‘화랑의 언덕’ 경주 ‘화랑의 언덕’ 내 호수 ‘수의지’/박근희 기자
7월부터 일반 개방 경주 '화랑의 언덕'

경북 경주시 산내면 'OK그린청소년수련원'에 있는 화랑의 언덕은 청소년수련 시설로 운영해오다 왕년의 걸 그룹 '핑클'이 캠핑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유명해졌다. 방문객이 불쑥 찾아오거나 문의 전화가 늘면서 지난 7월부터 아예 일반인에게 개방을 시작했다. 단석산 줄기에 있는 이곳은 경주 시내에서 35~40㎞ 떨어져 있는데 주말이면 주차장이 만차를 이룬다. 주차장 앞길 따라 300m 정도 오르면 드넓은 초원에 드문드문 '나 홀로 나무'가 우뚝 서 있는 화랑의 언덕과 만난다. 언뜻 골프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일반 개방 후 현재 피크닉 장소와 '파크 골프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하늘 아래 '언덕'에 돗자리를 펴고 눕거나 앉아 피크닉을 즐긴다. 친정 엄마, 다섯 살 자녀와 온 이경화(38)씨는 "어린아이가 있어 등산은 꿈도 못 꾸는데 차를 타고 편히 산 전망대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진짜 매력은 화랑의 언덕을 지나면 나오는 전망대 '명상의 바위'에서 느낄 수 있다. 구태여 힘들게 산길을 오르지 않아도 산 정상 바위에 앉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낙상 위험이 있어 아슬아슬해 보이나 전망대 근처에만 가도 만추(晩秋)를 향해 가는 황금벌판이 아래로 펼쳐진다. 단, 명상의 바위라는 이름과 달리 '인생 사진' 찍으려는 대열이 줄을 이어 감흥을 방해한다. 하산하는 길, 수련원 입구의 '수의지'도 놓치지 말 것. 해가 기울 때쯤이면 명상의 바위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는 곳이다. 입장료는 1인 1견(犬) 각 2000원(7세 이하 무료, 주차비 포함).

평창 오대산국립공원 내 전나무 숲 ‘밀 브릿지’
/ 밀 브릿지 제공
평창 오대산국립공원 내 전나무 숲 ‘밀 브릿지’ / 밀 브릿지 제공
숙소 갖춘 오대산 전나무숲 '밀 브릿지'

강원도 평창 오대산국립공원 밀 브릿지는 현재 대제학원 소유로 김은정(55) 대제학원 이사장이 '산림 왕'으로 불린 아버지 고(故) 김익로 선생 뒤를 이어 가꾸고 있다. 1975년 오대산국립공원에 편입됐다가 3년 전 허가를 받고 자연체험학습장으로 문을 열었다. 산책로를 정비하고 건축가 승효상씨와 함께 전나무 숲을 최대한 보존한 건물을 지어 편의 시설을 갖췄다. 이 건물은 카페와 갤러리, 명상원, 생활관(숙박동)으로 활용하고 있다. 관리를 맡은 황준호(47) 부장은 "이곳은 주로 삼림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했다.

66만1157㎡(20여만 평)의 숲은 전나무를 비롯해 잣나무, 소나무, 박달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울창하다. 숲속 어디서든 실컷 삼림욕을 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유명한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와 만난다. 삼림욕 후 약수 한잔은 소주를 섞은 것도 아닌데 '캬~' 소리가 절로 나온다. 녹물처럼 붉은색을 띠면서 탄산수처럼 톡 쏘는 맛이 느껴진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탐방 가능하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초등학생 1000원. 당일 숲 체험은 초등 1만1000원부터 성인 1만2000원. 숲 체험과 연계한 숙박은 비수기 2인 주중 10만원부터 성수기 4인 주말 22만5000원까지.

진해 야생화 정원 '보타닉뮤지엄'

최근 남해 여행객들의 코스로 떠오른 경남 창원시 진해보타닉뮤지엄은 작년 3월 경남 사립수목원 1호로 정식 개장했다. 김영수(57) 대표가 3만3000㎡(1만여 평)의 정원을 2500여 종의 야생화로 가득 채웠다. "10년 전부터 정원을 구상해 꾸미는 데 4년이 걸렸다"고 했다. 진해 앞바다와 마주한 야생화 정원의 꽃과 풀은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지만 주인의 손길 덕분에 전혀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유럽 정원 같다. 이제 1년 반 된 곳이지만 소문이 퍼져 '서울 손님'도 많이 다녀간단다.

가을 정원은 갈대, 구절초, 국화가 차지하고 있다. 김 대표는 "봄보다는 꽃이 화려하지 않지만 지금은 수수한 가을꽃들을 원 없이 만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쌀쌀해져도 걱정할 것 없다. 삼각형 지붕 모양의 유리 온실에선 사시사철 다양한 꽃과 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노란 잎의 은엽 아카시아가 핀다. 온실 뒤로는 단풍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꽃도 보고 단풍놀이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올해는 두 차례 가을 태풍으로 잎이 많이 떨어져 단풍이 예년만 못해 아쉽다. 오후 11시까지 개장해 야경 명소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낮도 좋지만 일몰 즈음에 가면 진해 앞을 물들이는 노을과 밤 바다, 은은한 조명으로 장식한 정원도 거닐어볼 수 있다. 보타닉뮤지엄의 마스코트가 된 '길냥이 가족'과 조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탐방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 입장료는 평일 3000원, 주말 5000원. 입장하면 폐장 시간까지 추가 매표 없이 하루 종일 재입장이 가능하다.

무단침입·쓰레기 투기… 사유지 주인들 골치

탐방 시간·수칙 미리 알고 가야

한적한 곳을 찾아 ‘인생 사진’ 남기는 스냅 촬영이 유행하면서 사유지 무단 침입도 문제가 되고 있다. 좋은 마음으로 개방했다가 방문객의 무분별한 훼손, 불법 주차 등으로 폐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탐방객 역시 모르고 갔다가 사유지라는 것을 알고 당황할 수도 있다.

부산 기장의 아홉산 숲은 지난 7월 개장 3년 만에 폐쇄했다가 6일 만에 재개장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충남 서산 신창저수지 부근 용비지는 전남 화순 ‘세량지’, 경북 경산 ‘반곡지’와 함께 사진 촬영 명소로 알려져 있지만 개방하지 않는 사유지다. 매년 탐방객이 늘어 일부 마을 주민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용현1리 김동만 이장은 “호수에 비치는 벚꽃, 단풍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걸 찍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2~3일 동안 버리고 간 쓰레기와 오물이 트럭 두 대 분량”이라고 토로했다. 원하는 사진을 찍겠다고 화장실도 없는 용비지 주변에 숙식하는 사람도 있다고. 무단 침입하는 이들을 언제까지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제주 한림읍 금악리 농공시설이자 인기 관광지인 성이시돌목장 역시 푸른 목초지에 방목하는 말을 구경할 수 있어 찾는 관광객이 많다. 독특한 건축물인 테쉬폰과 카페 ‘우유부단’, 이시돌센터 등을 개방한다. 문제는 ‘개방 구역 밖 무단 침입’이다. “개방 시설을 마련한 뒤에도 말 방목지인 목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종종 있다”는 게 관계자의 말. 목장 측은 “방역을 위해 일반인 출입을 엄금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의 오름도 사유지인 곳이 꽤 있다. 그중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용눈이오름<사진>은 탐방로를 개방하는 사유지다. 전파를 타면서 탐방객이 늘어 훼손이 심각하다. 좁다란 탐방로도 길이 닳아 폭이 넓어졌다. 도민들 사이에선 오름 보호를 위한 탐방 제한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개방된 사유지를 탐방할 때는 시간과 수칙을 숙지하고 가는 게 현명하다. 무단 침입하면 벌금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불법 주차를 비롯해 사유지 주변 주민도 배려해야 한다. 주차장이 협소하면 주변 음식점 등을 이용하고 주차 허용 시간 안에 탐방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유지를 개방하고 폐쇄하는 것 또한 ‘주인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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