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지배하는 자, 인간을 지배한다

조선일보
  •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19.10.12 03:00

[아무튼, 주말- 한은형의 애정만세]

냄새는 오감(五感) 중에 사람 마음을 다룰 때 중요히 여겨진다. 냄새만으로 타인과 사랑에 빠지거나 밀어내는 일이 가능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등장하는 그르누이는 자신의 냄새가 없어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지 못한다. 그르누이에게 냄새는 마음을 열고 닫는 첫 관문이자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게티이미지뱅크
냄새는 오감(五感) 중에 사람 마음을 다룰 때 중요히 여겨진다. 냄새만으로 타인과 사랑에 빠지거나 밀어내는 일이 가능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등장하는 그르누이는 자신의 냄새가 없어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지 못한다. 그르누이에게 냄새는 마음을 열고 닫는 첫 관문이자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게티이미지뱅크
바람을 타고 날아온 여자의 냄새를 맡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냄새는 담배 냄새였고, 미국인인 그 남자는 미국 담배가 아니라 스페인이나 프랑스 담배 냄새라며 여자가 외국인일 거라고 추측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궁금했다. 미국 담배 냄새는 어떻고, 스페인이나 프랑스 담배 냄새는 어떤지. 미국 담배나 스페인이나 프랑스 담배가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대체 어떤 성분 때문에 그렇게 추측한 건지도 궁금했다.

정말 궁금했던 담배 냄새는 따로 있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마리아 만치니'라는 시가다. 소설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식사가 끝나면 향수 뿌린 물이 담긴 접시에 손을 씻고, 러시아제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마리아 만치니를 피운다. 식사도, 향수 뿌린 물에 손을 씻는 행위도, 러시아 담배를 피우는 것도, 모두 이 브레멘산 시가 마리아 만치니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한 맨손체조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 마리아 만치니에서는 대체 어떤 냄새가 날지 오래도록 궁금했었다. 풍만한 연기도 연기지만 복합적인 냄새의 세계에 잠기기 위해 시가를 피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독일 뤼베크에 있는 토마스 만 기념관에서 마리아 만치니를 발견한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여기에 마리아 만치니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마리아 만치니가 아니라 '마리아 만치니'라고 쓰여 있을 뿐인 나무 상자였다. 시가 상자였고, 원하는 사람은 살 수도 있게 만들어놓은 기념품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맥이 빠졌다. 그래도 마리아 만치니 상자를 열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여기에 무슨 냄새가 배어 있을지 오래도록 궁금해온 사람이니까. 상자에는, 아무것도, 어떤 냄새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좀 상심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생각했다. 이 시가 상자에 마리아 만치니 냄새를 입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그렇다면 나는 그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 '마의 산'의 냄새를, 한스 카스토르프가 보내던 오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르누이가 아닌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냄새의 천재 그르누이. 그르누이는 냄새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인간이다. 그는 글이나 지식, 통념이 아닌 온갖 냄새만으로 세상을 익혔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후신경(嗅神經)을 통해 주변의 모든 사물을 완전히 파악했다. 가이아르 부인의 집에 있는 모든 것, 북부 샤론느 거리에 있는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돌과 나무, 숲과 나무 울타리, 심지어 작은 얼룩에 이르기까지 그는 냄새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구분할 수 없고, 다시 확인할 수 없고, 그때그때의 일회성 속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수만, 수십만 가지의 독특한 냄새를 수집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아주 정확하게 다룰 수가 있었다.(…) 심지어 그는 상상 속에서 냄새들을 서로 섞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냄새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체험한 모든 냄새의 색인이 실린 커다란 사전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가이아르 부인은 '섬뜩한 아기'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그르누이를 여덟 살 때까지 키운 여자다. 18세기 파리의 생선 좌판에서 태어난 그르누이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생선 내장들과 쓸어버리려던 어머니가 영아 살해죄로 사형당했기 때문에 날 때부터 혼자였고, 혼자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강해져야 했다. 그가 택한 방식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었다. 여덟 살이 된 그르누이는 무두장이에게로 보내져 짐승의 가죽을 분리하는 일을 하며 소금 뿌린 날가죽을 매달아 놓은 근처에서 잠을 잔다. 그러다 향수 제조인 발디니의 도제로 들어가 파리를 넘어 유럽까지 발디니의 상점이 명성을 떨치게 만든다. 향기의 천재인 그가 최고급의 원료를 써서 최상품 향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심드렁하게 읽던 나는, 그르누이가 뭔가를 깨달은 시점부터 달라졌다.

책의 중반이 훨씬 지났을 때였다. 그르누이는 자각했던 것이다.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냄새가 전부인 그에게는 마치 얼굴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온 듯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르지만 독자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섬뜩한 아기'라며 그가 여러 번 버려졌던 것도 몸에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가이아르 부인의 집에서도 아이들이 그를 죽이려 했던 이유 또한 냄새 때문이라는 것을. 냄새가 나지 않는 인간은 파악할 수 없으며, 그래서 위험하다고 아이들마저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이때, 그르누이는 자신을 위한 최초의 향수를 만든다. 그가 만들려는 향의 이름은 '인간의 냄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그르누이가 '사람'이 되려면 '아무런 냄새'라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수천 명의 사람에게서 다른 냄새가 나고, 그 다름을 '체취'라고 한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르누이는 인간의 냄새를 단순화해 그것을 만든다. 땀과 기름, 그리고 시큼한 치즈가 섞인 것 같은 냄새를 말이다. 이 향수를 '입은' 그르누이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사람으로 인식한다.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향기의 천재가 자신을 위해 만든 향수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기 위한 향수라는 게. 그르누이는 이 향수를 입고서 최초로 '온전한' 사람이 된다.

사람다운 냄새 덕에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된 그르누이는 다음을 계획한다. 누구라도 냄새의 주인에게 빠져 마음속 깊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천사의 냄새'를 만들자는 것. 냄새를 지배하는 자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의 냄새를 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그르누이는 오래 계획해온 인생의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사랑을 느껴보지도 받아보지도 못한 그르누이는 그 냄새 덕분에 군중 모두로부터 열광적인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어디에도 '천사의 냄새'를 만든 데 들어간 향의 성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의 냄새'라는 추상적인 것 말고는. 향수를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쥐스킨트가 그 냄새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려고 이 책을 읽었는데 말이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체취가 있다면 그건 천사가 아닐 테니까. 체취란 인간의 것이며, 그러므로 세상에 천사의 냄새 같은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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