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털어 '10만평 예술공원' 만든 조각가 부부

입력 2019.10.11 03:53

하슬라아트월드 박신정·최옥영… 26년전부터 작품 모으며 작업 시작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만지며 벽 허물고 소통하는 공간 됐으면"

"퇴직금을 다 털어서 산 10만평(약 33만㎡) 샀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어요."

강원도 강릉 정동진 인근 등명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높이 10m가 넘는 해시계 조형물, 다산(多産)의 상징인 비너스상이 자리 잡은 야외 조각공원이 펼쳐져 있다. 미술관 건물에는 수십 가지 종류의 피노키오 조각상, 거대한 고래 조각 등이 전시돼 있다. 2003년 문을 연 하슬라아트월드의 박신정(58) 대표와 최옥영(60) 강릉원주대 교수 부부는 "소통하는 예술을 하기 위해 이곳을 열게 됐다"고 했다. '하슬라'는 강릉의 옛 이름이다.

강원도 강릉 하슬라아트월드에서 만난 박신정(왼쪽) 대표·최옥영 교수 부부가 통나무로 만든 아치 모양 조형물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강원도 강릉 하슬라아트월드에서 만난 박신정(왼쪽) 대표·최옥영 교수 부부가 통나무로 만든 아치 모양 조형물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영준 기자

1990년 결혼한 조각가 부부는 '장거리 커플'이었다. 아내는 대구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남편은 경기도 광주, 경북 경주 등 전국의 돌 공장을 떠돌아다니며 조각 작업을 했다. 크기가 큰 석재를 보관할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웠고 가공할 수 있는 기계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 최 교수는 "한번은 밭에서 조각 작업을 하는데, 정부에서 토지를 신고된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지 조사를 나왔다"고 했다. 석재를 옮기는 데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다음에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땅에 묻었는데 그 위로 집이 생기더니 이제는 번화가가 돼 찾아갈 수도 없게 됐다.

그러던 중 안정된 작업 환경을 갖기 위해 1993년 강릉 왕산면의 폐교를 빌려 작업장을 열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한곳에 모으고 동료 예술인들도 와서 작업을 하다보니 그럴듯한 전시장이 됐다. 박 대표는 "지자체로부터 도움을 받아 작업장을 얻었는데, 이곳을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와서 작품들을 구경하다보니 자연스레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이 됐고 그곳에서 지역 축제도 열었다"고 했다.

작품이 점점 쌓이다보니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아내 박 대표가 교수를 그만두며 받은 퇴직금을 털어 현재 부지 약 10만평을 매입했다. 단순히 작업장을 개방하는 것을 넘어 대중을 위한 제대로 된 전시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이전을 준비해 갔다.

하지만 2002년 태풍 루사가 강릉을 휩쓰는 바람에 보관하고 있던 조각 작품 100여점이 떠내려가고 훼손됐다. 예술품이란 이유로 재해 보상도 받지 못했다. 박 대표는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며 "그래도 이미 엎지러진 물이라는 심정으로 처음부터 하나하나 작품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지금 생각하면 수해가 없었다면 작품을 옮겨놓는 수준밖에 안 됐을 텐데 그때의 감정이 담기고, 이곳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그 덕분에 예술 공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있는 작품을 보여주는 공간을 넘어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예술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관람객이 보고, 만지고, 올라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 대중과의 벽을 허무는 예술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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