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학살의 폴란드 비극에도 강인했던 여성들 목소리 되살려

조선일보
입력 2019.10.11 03:26

[노벨문학상] 2018 올가 토카르추크의 문학 세계

극우 세력의 살해 협박에도 수난과 질곡의 역사 들춰내
허구·현실 오가며 인간 탐구

태고의 시간들
올해 노벨상을 받은 올가 토카르추크는 폴란드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국민 작가다. 신화나 전설을 차용해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문체로 인간의 고독과 욕망을 탐구해왔다.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수상 소식을 들은 토카르추크는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소설들이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고 전 세계 누구에게나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은 1996년에 출간돼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줬다. 네 명의 천사가 지키는 폴란드 가상의 마을이 배경. 84편의 조각으로 나뉜 소설은 삼대에 걸친 가족과 이웃뿐 아니라 자연과 사물까지 짤막한 글의 주인공이 된다. 1·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공산 정권의 지배까지 폴란드의 참혹한 비극과 그 안에서도 삶을 이어나가는 인물을 기이하면서도 환상적으로 풀어낸다.

특히 남편이 전쟁터에 끌려간 아내, 독일군과 러시아군에게 강간당한 여성 등 인생 여정을 따라가며 역사 속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살려 냈다. 신화에 뿌리를 둔 여성 인물들은 자주적이며 강력하고 독립적이다. 지난 2월 '태고의 시간들'(은행나무)이 한국에 번역 출간되며 본지와 인터뷰한 토카르추크는 자신의 소설을 '형이상학적 사실주의'라 지칭하며 "다양한 인물의 삶과 그들의 시간이 서로 뒤엉켜 있는 실타래를 떠올렸고, 실타래를 풀어 현실을 직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맨부커상에 이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 올해 발표된 노벨상 수상자 중 첫 여성이며,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6명 중 15번째 여성 수상자다.
맨부커상에 이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 올해 발표된 노벨상 수상자 중 첫 여성이며,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6명 중 15번째 여성 수상자다. /EPA 연합뉴스

심리학과 철학이 작품 세계의 바탕이 됐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작가가 되기 전 심리치료사로 일했다. 스스로 카를 융의 제자라 생각하며 그의 학문을 소설에 녹여내기도 했다. 불교 철학에도 관심이 있어 200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용문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기도 했다.

1962년 폴란드 술래쇼에서 태어난 토카르추크는 공산 정권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토카르추크는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한 구속감을 느끼곤 했다"고 표현했다. 1989년 처음으로 여권을 받고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지자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소설 '방랑자들(FLIGHTS)'은 여행에 대한 100편의 짧은 글 모음집. 떠남과 이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담겼다. 휴가를 갔다가 가족을 잃어버린 남자, 지중해로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는 노교수 등 끊임없이 이동하는 방랑자들을 그렸다. 2018년 맨부커상을 받은 '방랑자들'은 오는 21일 민음사에서 출간된다.

토카르추크는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대중적 지식인이자 운동가이기도 하다. 동료 유대인을 강제 개종시키려 한 종교 지도자 이야기를 다룬 '야고보서(The books of Jacob)'는 폴란드 최고 권위인 니케문학상 대상을 받았지만, 폴란드의 어두운 역사를 들춰내 명예를 훼손했다며 극우 세력에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는 우리를 규정짓고, 공동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며 긴밀한 동질감을 형성한다"면서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겪어온 폴란드인들은 역사를 돌이켜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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