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서 욕설하는 '관객모독'… 희곡·영화·소설의 관습 깼다

조선일보
  • 유현주 연세대 독문과 교수
입력 2019.10.11 03:26

[노벨문학상] 2019 페터 한트케의 문학 세계

獨 문학사에 도발 일으킨 주역… 세르비아 옹호해 비난 받기도
가디언은 "보수적 선택" 비판

관객모독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77)는 우리나라에선 '관객모독'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출신 극작가다. 1966년 데뷔한 해에 발표한 이 작품은 내용과 형식 모두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언어에 대한 극도의 실험 정신으로 기획됐으며,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배우가 관객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등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기존 관습을 깨는 도발적 시도는 한트케의 트레이드 마크로, 그의 문학 작품뿐 아니라 행적에서도 드러난다.

한트케의 등장 자체가 독일 현대 문학사에선 하나의 도발이었다. 독일 전후 문학계를 이끌던 47그룹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24세의 젊은 작가는 귄터 그라스가 포함돼 있는 기존의 권위 있는 작가들을 앞에 놓고 그들이 "매우 어리석고 지루한" 작품들만 가져왔다며 맹비난했다. 덕분에 무명 한트케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표지를 장식하며 매우 주목받는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한 해 발표한 극작품 세 편이 모두 성공적으로 공연됐고, 1972년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가 격찬을 받으면서 독일의 양대 문학상인 실러 문학상과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젊은 나이에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았지만 초년기 삶은 순탄치 않았다. 한트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궁핍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29세에 어머니가 건강과 불행한 결혼생활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망 없는 불행'(1972)은 그가 어머니의 자살을 겪고 쓴 산문이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시나리오를 쓰기도 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 2009년 포르투갈 에스토릴 영화제에 참석해 강연하는 모습이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시나리오를 쓰기도 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 2009년 포르투갈 에스토릴 영화제에 참석해 강연하는 모습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트케는 새로운 매체의 실험에도 관심을 보였다. 뉴저먼 시네마의 대표 주자인 빔 벤더스 감독과의 공동 작업이 가장 유명하다. 소설 '페널티킥에서의 골키퍼의 불안'이 1972년 벤더스에 의해 영화화된 이후 다수의 작품을 함께했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로 알려져 있는 작품 '베를린 위의 하늘'도 포함돼 있다.

한트케의 거침없는 도발은 1996년 절정을 이뤘다. '세르비아를 위한 정의'란 글을 발표하면서 정치적 격론의 한복판에 선다. 유럽 전체가 세르비아의 대(對)보스니아 정책에 인도적 우려를 표시하는 가운데 홀로 세르비아를 변호하고 나선 그에 대해 독일 언론은 "한트케가 지적인 자살을 결행했다"고 비난했다. 한트케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도 상당수 등을 돌렸다. 이런 십자포화를 맞고도 한트케는 2006년 대량 학살의 주인공인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해 연설함으로써 또 한 번 공분을 샀다. 이번 수상이 독일어권 문단에서 다소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다. 가디언은 10일 한트케의 수상에 대해 "한림원은 '남성 중심' '유럽인 우선주의'에서 벗어나겠다더니 양쪽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한트케를 보수적으로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자신에게 쏟아진 맹렬한 비난에도 한트케는 지금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벌여 왔으며, 칠순이 넘은 2010년 이후에만도 12편의 작품이 성공적으로 출판됐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