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器의 언어 아닌 樂器의 언어 되찾아야"

조선일보
입력 2019.10.11 03:10

[포레스트 갠더&문정희]

올해 퓰리처상 수상한 美 시인, 서울국제작가축제 위해 내한
문 시인과 '시와 삶' 주제로 대화 "여성의 언어 회복시키려 노력"

올해 퓰리처상 시 부문 수상자인 미국 포레스트 갠더(63) 시인과 한국의 문정희(72) 시인은 오랜 친구처럼 만나자마자 서로 껴안았다. 두 사람은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만나 스스럼없는 친구가 됐다. 문정희 시인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아마존에서 영어 시집을 구매해보고 그의 팬이 됐다"고 말했고, 갠더 시인은 "문 시인은 한국의 상징적(icon)인 시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시인이 자신이 쓸 소재를 선택해서 쓰는 반면 문 시인은 늘 어떤 소재를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주어진 것 같다"면서 "'여성의 역할'이란 소재를 들여다보고 탐색하는 그의 시에선 어쩔 수 없는 씁쓸함과 신랄함이 우러나온다"고 했다. 두 시인은 12일 서울 동대문 DDP에서 '시와 삶'을 주제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눈다.

문정희(왼쪽) 시인은 “갠더(오른쪽) 시인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미국 모하비사막에서 태어났다”면서 “나그네의 가로등 역할을 하는 조슈아 나무와 바람에 굴러다니는 회전초(回轉草)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문정희(왼쪽) 시인은 “갠더(오른쪽) 시인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미국 모하비사막에서 태어났다”면서 “나그네의 가로등 역할을 하는 조슈아 나무와 바람에 굴러다니는 회전초(回轉草)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갠더 시인은 여성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써왔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시집 '함께 하다(Be with)'는 4년 전 갑자기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과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아픔이 담겼다. 그는 "삶의 고통을 극적으로 포장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면서 "그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이 내 시를 읽고 자신의 슬픔을 헤아려 볼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문 시인은 그의 시집에 대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시의 재료가 되지만, 결코 인생을 매몰시키진 않는다"고 했다.

갠더 시인은 "아주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영웅처럼 정의에 대해 연설하기는 쉽다. 오히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는지,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무엇에 주목하는지가 훨씬 더 윤리적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문제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갠더는 홀어머니 밑에서 두 여동생과 자랐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세 아이를 홀로 키우며 좁은 아파트 소파에서 늘 잠들어야 했다. 그는 "어머니는 시를 사랑하셨고 뱀이나 거북이, 도마뱀을 키우는 아들을 인내심 있게 두고 보며 자연을 사랑하게 해줬다"면서 "지금의 나는 전부 우리 어머니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 없이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우리 식구의 대화 방식은 육체적이고 감정적이고 때론 직관적이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남성의 언어와는 사뭇 달랐다."

문 시인은 "나 역시 남자들의 언어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해왔다"고 동감했다. "여성의 언어를 회복시키기 위해 50년 시 인생 동안 노력해왔다. 꼭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우리는 무기(武器)의 언어 대신 노래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악기(樂器)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갠더 시인은 "시인은 사람들의 어휘와 언어를 확장해야 한다"면서 "습관적으로 쓰는 말들만 쓰지 않도록 사고와 시야를 넓혀주고, 언어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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