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바꾼 임방울의 춘향가… K팝의 뿌리는 세종이죠"

조선일보
입력 2019.10.11 03:10

[50년 동안 한국전통음악 연구한 로버트 프로바인]

"1967년 미군으로 한국과 인연, 음악 향한 세종의 관심에 꽂혀… 궁중음악서 사물놀이까지 연구
신하 반대에도 한글 창제했듯 음악도 우리 것 써야한다고 생각
'천재' 세종의 머릿속이 궁금해"

미국 하버드대에서 음악학을 전공한 파란 눈 청년이 군에 입대했다. 1967년 2월이었다. 배치된 나라는 한국.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첫인상은 미안하지만, 지저분하고 끔찍했어요. 이듬해 1월엔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됐고, 11월엔 무장공비 100여명이 이승복 어린이를 살해하는 등 긴장도 극에 달했죠." 고단한 군 생활을 달래준 건 동료가 건넨 낡은 LP 음반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좋아한 음악가는 슈베르트. 그런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에서 임방울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가 흘러나오는 순간 세상이 뒤집혔어요. 이런 음악이 있다니!"

로버트 프로바인(73) 미 메릴랜드대 명예교수가 쾌활하게 웃었다. 하버드대에서 음악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궁중음악과 판소리, 창극, 사물놀이 등을 주제로 100건 가까운 논문과 책을 쓴 음악학자. 세종시문화재단이 개최한 '세종대왕의 문화적 성취 조명 국제심포지엄'에서 '세종 시대의 음악'으로 발표를 했다. 지난 4일 서울 마포에서 만난 그는 "내게 세종은 조선왕조실록과 용비어천가 등 사료로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 생각을 뜯어보고 싶은 최고의 통치자"라고 했다.

지난 4일 만난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훈민정음에 매료돼 일생을 바친 게리 레드야드 미 컬럼비아대 석학은 세종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왕이었다고 했다. 나도 100% 동의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만난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훈민정음에 매료돼 일생을 바친 게리 레드야드 미 컬럼비아대 석학은 세종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왕이었다고 했다. 나도 100% 동의한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판소리에 매료된 이후 그는 한국 음악학의 태두로 꼽힌 만당 이혜구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18세기나 지금이나 똑같잖아요? 한국 음악은 연주할 때마다 더해지고 빠지고, 화려해졌다가 수수해졌다가 하는 변화무쌍함이 좋았죠." 그가 주시한 건 '음악을 향한 세종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조선시대 의궤와 악보를 정리해 편찬한 악학궤범(1493)을 번역해 박사 학위를 받기로 마음먹었지만, 막상 들춰보니 그 이전의 상황도 알아야 했다. "한국 음악을 알려면 결국 세종을 알아야 했어요."

그는 "세종은 죽어서도 '우리 음악'을 듣고 싶어한 최초의 임금이었다"고 했다. "당시 조선의 음악은 궁중제례에 사용된 순수 중국음악인 아악, 중국 악기와 한국 악기를 섞어 연회 때 사용한 당악, 순수 한국 음악인 향악 등 세 가지였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살아서는 향악을 듣지만, 죽어서는 아악을 들어야 했죠. 세종은 그걸 못마땅해했어요. 대신들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해 반포한 세종은 음악도 우리 것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실제로 아악은 1447년 최초의 격자무늬 칸 악보인 정간보가 만들어지고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 등 새로운 왕실 음악이 작곡되면서 점차 사그라들었죠."

프로바인 교수의 명함 뒷면엔 한국명 '朴巴人(박파인)'이 새겨져 있다. 이혜구 선생이 지어줬다. "세종시대 당악과 향악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조선의 음들을 정리해낸 박연처럼 밀양 박씨가 되고 싶었죠." 장구도 멋들어지게 친다. 2년간 김병섭 명인한테 배웠다. "한국의 음악은 한과 얼을 함께 아우른다"며 "특히 징은 첫소리는 불협화음이지만 갈수록 상승해 민중의 기상을 나타낸다"고 했다. "중국·일본의 음악은 '하나둘 하나둘' 딱 떨어지는 2박자예요. 반면 한국 음악은 '하나~둘셋 하나~둘셋' 요동치는 3박자죠. 그만큼 자유로워요." 그는 "세종은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팝과 BTS를 생각도 못했겠지만, 이미 그 싹은 그의 머릿속에서 움트고 있었다"고 했다.

프로바인 교수는 "지금도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며 1970년대 한국을 떠올렸다. "한겨울 꽁꽁 언 강가에서 여인네들은 빨래를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구성진 가락을 노래했죠. 내게 국악을 가르쳐준 선생님들도 늘 푸근하게 웃었어요. 내게 한국은 또 하나의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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