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01] 건승(健勝)과 역임(歷任)

조선일보
  •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9.10.11 03:12

양해원 글지기 대표
양해원 글지기 대표

한낱 교열쟁이가 어찌 지체 높은 이의 진퇴(進退)를 떠들랴. 다만 그 말과 글을 유심히 살펴보고자 인터넷을 들락거리다 얼떨해졌을 뿐.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 특별감찰반원의 비위 의혹과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의 거취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기사다. 같은 사람 일로 시끄러웠던 게 1년도 안 됐다니…. 아무튼 여기서 들먹일 일 아니라 치고, 정작 놀란 건 당시 어느 국회의원이 올렸다는 글 때문이다.

'적폐 청산과 사법 개혁을 위해 조국의 사퇴가 아니라 조국의 건승을 바란다.' 물러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야무지게 일해주기 바란다는 뜻에서 '건승(健勝)'이란 말을 쓴 모양이다. 하지만 건승은 건강(健康)과 같은 말. '이길 승(勝)'에 홀려 '잘나가다' '활약하다'쯤으로 오해했으렷다. 勝에는 '훌륭하다' '뛰어나다'는 새김도 있다. 경치 좋은 곳이나 이름난 경치를 말하는 '명승(名勝)'이 바로 그런 뜻을 담았다.

이러니 동호회 대화방에서 오가는 말까지 가타부타하기가 뭐하다. '야구 하기 좋은 날씨네요. 건승하세요.'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며 응원하는 말로 흔히들 쓰는 표현이다. 이기기 바란다고 말하려 했으나, '건강하세요' 한 셈이다. 그런 날은 별로 이긴 적도 없으니 원….

아예 한자를 잘못 알고 썼음직한 말도 있다. '대표팀 투수 코치를 역임하고 신변에 변화가 생긴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프로야구 한화가 정민철 국가 대표팀 코치를 단장으로 앉혔다는 소식의 한 토막이다. '역임'을 '力任(임무를 힘써 해냄?)'쯤으로 여겼나 보다. 한데 이런 말은 없다. 역임(歷任)의 歷은 이때 '두루'라는 뜻. 따라서 정 단장이 맡았던 이런저런 일을 말했다면 어울리지만, 한 자리만을 가리킬 때 역임은 들어맞지 않는다.

마침 한 친구가 팀원들한테 인사말을 올렸다. '앞으로도 건승하시고 즐거운 야구 하십시오. 전 이만 퇴장….' 느닷없는 작별이 서운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건승, 몸 성히 지내라는 뜻이었을까? 이래저래 한번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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