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설움으로 얼룩진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 100년史

입력 2019.10.10 09:47 | 수정 2019.10.10 09:53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 시각) 트위터를 통해 쿠르드족에 대한 공습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는 군사 작전을 개시한 이유에 대해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남부 국경의 테러 통로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터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며 공습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터키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쿠르드족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뭘까.

쿠르드족은 아리안계 인종으로 기원전 3세기부터 중동 일대에서 고유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지키며 살아왔다. 터키(1500만명)·시리아(200만명)·이라크(500만명)·이란(800만명) 등에 퍼져 있다. 독립된 나라를 갖지 못하고 중동 곳곳에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 유랑 민족이다. '중동의 집시(Gypsy)'라고 불리기도 한다.

쿠르드는 과거 수차례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오스만제국에 속해 있던 쿠르드족은 세계 1차 대전(1914~1918년) 당시 "독립국가를 만들어주겠다"는 영국의 약속을 믿고 영국 등 연합국 편에 서서 오스만제국과 싸웠다. 오스만제국이 무너지자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는 데 성공했다. 1920년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을 통해 터키 동부에서 독립적 자치권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터키 젊은 군인들이 들고일어나면서 연합국과 터키는 1923년 패전 조약을 무효화했다. 쿠르드족의 독립을 무산시킨 로잔 조약이 새로 체결된 것이다. 여기에는 영국의 잇속 챙기기가 작용했다. 쿠르드족에게 주기로 한 땅에 대규모 유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당시 석유 확보에 온 힘을 기울였던 영국 윈스턴 처칠 장관이 그 지역을 아예 영국령 이라크로 편입시켜 영국 영향력 하에 두려 한 것이다.

1946년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란을 점령했던 소련의 도움으로 이란 북부 지역에 쿠르드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1년 채 안 돼 이란에 궤멸당했다. 공화국을 세우게 한 것은 이란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소련의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소련은 이란이 쿠르드 공화국을 공격해 오자, 쿠르드 공화국의 요청에도 군사 지원을 하지 않았다.

1972년에는 미국과 이란의 도움으로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 수립을 위해 이라크군과 3년 동안 싸웠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이란 팔레비 왕조와 손잡은 미국이 이란과 국경 분쟁을 벌이는 이라크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쿠르드족에 무기와 자금을 댔다. 그러나 이란과 이라크가 협상을 통해 국경 분쟁에 합의하면서, 쿠르드 독립의 꿈은 날아갔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후 1988년 쿠르드족이 과거처럼 이란 편에 설 것을 우려해 이들을 화학무기로 대량 학살하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기도 했다.

비슷한 역사는 1991년에도 반복됐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사막의 폭풍 작전을 통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격퇴한 후, 사담 후세인 축출을 겨냥해 이라크 내부의 봉기를 촉구한 것이다. 이에 호응해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독립운동을 벌였으나, 미국은 끝내 이들에 대한 군사 지원을 하지 않았다.

2014년부터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중동 지역에서 미군과 함께 이슬람국가(IS)와 싸웠다. IS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미국이 쿠르드족의 독립을 지원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쿠르드족 민병대는 지상전에서 사실상 총알받이 역할을 하며 2018년까지 4년 여간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미군 철수를 선언하고 "터키가 오래 준비한 시리아 북부 군사작전을 곧 추진할 것인데, 미군은 그 작전에 지원도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쿠르드족은 우리와 함께 싸웠지만 이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돈과 장비를 지급받았다"며 "이제 이 말도 안 되는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 우리 군인들을 집으로 데려올 때"라고 했다.

미군 철수 선언은 쿠르드와 이웃한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을 묵인한다는 메시지였다. 터키는 전체 인구 20%가량이 쿠르드족이라, 독립국가를 꿈꾸는 쿠르드족 영향력 확대에 극도로 민감했다. 특히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그간 이런 쿠르드족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독립국가를 세우고 싶어 하는 쿠르드족이 터키 내 쿠르드계 반정부 세력과 연계해 터키의 정치적 안정을 해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틀 뒤 이런 우려는 실제 상황이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군과 시리아국가군(친터키 시리아 반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에 대항하는 ‘평화의 샘(Peace Spring)’ 작전을 시작했다"고 했다. 미군 철수 선언 이틀 만에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시리아 북동부 지역 미군 철수로 방패막을 잃고 ‘토사구팽’ 당한 쿠르드족은 이제 러시아에 손을 내밀고 있다. 바드란 지아 쿠르드 시리아 쿠르드자치정부의 고위 관리는 "미군이 전면 철수하면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리아 정부나 러시아와 대화할 수 있다"며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와의 대화에서 지지자와 보증자로서의 역할을 맡아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시리아 내전에서 적이었던 시리아 정부와의 중재를 러시아 측에 요청한 것인데, 미국의 배신에 미국의 적이었던 러시아와 시리아 알 아사드 정부 편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쿠르드족은 ‘배신’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FP 통신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터키의 시리아 북동부 지역 군사 작전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 역시 터키의 시리아 내 쿠르드족 공습 작전에 앞서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양측은(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의 영토적 통합성을 유지하고 주권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