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K팝, 한국어→글로벌 '음악적모국어'로 만들다

  • 뉴시스
입력 2019.10.10 07:48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어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발견이 아닌 기정사실이다. 한글날을 맞아 이 현상만 짚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한류와 함께 한글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방탄소년단에게 화관문화훈장을 수여했으니, 그들의 성과를 언급하는 것은 중언부언이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 덕에 K팝이 '음악적 모국어'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 '아미(ARMY)'가 문화언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공통된 정체성을 형성한 아미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물리적이든 추상적이든 방탄소년단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기반으로 삼는다. 음악은 표현하는 것이며 언어처럼 응용을 하다 보니, 한국어 사용도 자연스럽게 된다.

◇문화언어 공동체 타고 한국어 퍼진다장원호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와 송정은 같은 학과 SSK 연구교수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18 한류 파급효과 연구'에 게재한 논문 '한류의 비경제적 가치 분석: BTS와 ARMY의 공감적 소통 사례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K팝 팬들은 자기만족 외에도 한류를 매개로 공동체를 형성한다.

팬들이 자발적인 한류 스타에 대한 애정 표현을 하고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는 팬 커뮤니티의 정체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메시지가 글로벌하게 퍼진 이유 중 하나는 아미들의 자발적 참여다. 한국어 위주의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언어 장벽을 넘어 각국으로 전파된 이유다.

북아메리카 아미들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방탄소년단 노래 신청하기 캠페인을 꾸준히 실천했다. 방탄소년단을 알지 못하는 DJ들에게 방탄소년단 소식을 전달하고 노래를 설명했다.

그 결과 비영어권 노래를 방송하지 않는 라디오 채널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른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200' 3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어에 담긴 메시지

팬덤 생활을 즐기는 것은 이제 일부 마니아들의 특이한 행위가 아니다.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매김했다. 장 교수와 송 교수는 "팬들 스스로 자기 완성적 실현을 위한 행위이자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공동체 일원들과 바람직한 사회를 구축해나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제 팬덤은 개개인에게 즐거움 및 자기효능감을 제공하는 감정적 및 행동적 요소이자, 소통과 공감을 통해 나, 너, 우리로 연결되는 연대감을 형성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한국어가 이 공동체에서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사실 한글은 각지고, 딱딱한 어감으로 인해 세계인이 함께 부르는 노래 가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박한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한국어는 사실 아직 세계에 생소한 언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19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서 아시아 지역의 K팝 경험자들이 K팝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한국어 가사가 어렵고 생소'하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가사의 핵심은 무엇일까. '메시지'다. '러브 유어셀프' 연작 앨범을 내고 같은 타이틀로 월드 투어를 돌았던 방탄소년단은 UNICEF와 함께 한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캠페인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설파했다.

특히 작년 9월 뉴욕 UN 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UNICEF 청년 어젠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행사에서 대표 연설자로 나서 7분가량 영어로 연설한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당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피부색이 무엇이든 간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십시오"라고 청했다.

이는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스피크 유어셀프(Speak yourself)'라는 타이틀로 캠페인처럼 번졌다. 여러 나라에서 나이와 무관하게 다양한 인종이 'Speak yourself' 앞에 해시태그를 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앨범과 콘서트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활동이 사슬처럼 연결고리로 묶여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롤링스톤은 "가사를 찾아보기 전까지 오히려 더 신비하게 느껴지며, 방탄소년단이 전하는 메시지는 정말 아름답다"는 팬들의 인터뷰를 게재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한국어 신곡이 나오면 다국적 팬들은 바로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 퍼 나른다. 장 교수와 송 교수는 "서비스 사용자가 콘텐츠 창작에 참여하는 아이디어와 그간의 네트워크의 형성됨을 평가하거나 또는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방탄소년단이 던진 메시지가 또 다른 메시지를 낳고, 그 시발점인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1980~90년대 우리나라에서 대세는 영미 팝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KBS FM 라디오 '굿모닝팝스'에서 흘러나오는 영미 팝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영어권 문화에 대해 알아갔고 세계인과 소통하게 됐다.

방탄소년단을 기점으로 폭발한 K팝이 세계인들의 음악적 모국어가 돼 다국적 팬들을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돼 준다.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한글과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유튜브에는 한국어 노랫말이 흘러나오는 K팝 뮤직비디오 각국 자막을 달아 놓은 영상이 수두룩하다. 트위터에는 14만여 팔로워의 '감자밭할매' 등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한 K팝 번역 계정이 인기다. 인스타그램에는 해시태그 '#한국어공부'가 붙은 게시물이 수십만개다. 주로 K팝 아이돌이 자신들의 콘텐츠를 올리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V앱도 주요 공부 수단이다.

외국인이 공들여 쓴 한국어로 고백한 내용도 자주 눈에 띈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해외 팬을 '사랑둥이'를 변형, '외랑둥이'라고 부른다. 이들 외국 팬은 방탄소년단 팬덤으로 유입되는 동시에 한국문화에 흥미를 품게 된다.

국외 한국어·한국문화 교육기관 '세종학당'을 비롯한 한국어 강의 수강생 역시 해외 곳곳에서 K팝 팬을 중심으로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에서 10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방탄소년단 '아이돌' 노랫말에 포함된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 얼쑤' 등 우리말 추임새에 궁금해 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아이돌'을 피처링한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팝스타 니키 미나즈가 출연한 뮤직비디오 버전에는 미나즈가 영어 랩을 할 때 한글 자막을 삽입하기도 했다.

웸블리 등 방탄소년단 스타디움 공연에는 다국적 인종이 모여 '한국어 떼창'이 쏟아낸다. 많은 전문가들이 짚었듯 '체험 팬덤'의 현상이다. 국적, 인종, 문화를 초월해 하나가 된다. 한국어는 하나의 언어가 아닌 연대의 상징이 된다.

◇방탄소년단 뿐 아니다

방탄소년단 외에도 한국어 매력을 알리는 음악가들이 있다. 미국 뉴욕 퀸스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예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랐다.

힙합 바이브와 아방가르드 팝을 절묘하게 블렌딩한 신선한 사운드와 함께 속삭이듯 읊조리며 주술처럼 전해지는 한국어와 영어의 래핑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세계 음악신과 팬들은 EDM 사운드에 섞인 한국어 발음을 신비롭게 듣는다.

예지는 지난 8월 단독 내한 공연 전 e-메일 인터뷰에서 예지는 "각이 져 있고 질감이 있는 느낌이 들고, 또한 발음이 시를 읊는 것 같다. 제가 한국어를 말할 때는 마치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들다보니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존 한국어에 대한 편견을 깨는 발언이다.

한국인 DJ 페기 구의 한국어로 된 하우스 곡 '잊게 하네'는 영국 인디음악협회의 ‘올해의 노래’로 뽑히기도 했다.

해외 팝스타들의 소셜 미디어에 한글이 가득한 경우도 있다. '천재 소년'으로 통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싱어송라이터 마틴의 댓글이 예다. 그를 좋아하는 한국 팬이 쉴 새 없이 한글로 애정을 드러내서다. 그런 마틴도 K팝에 관심이 많아 과거 e-메일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 싱어송라이터 딘 등과 작업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이 맞물리면서 한국에 대한 브랜드와 한국문화의 인지도도 상승하게 된다.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이 노래 '마 시티(Ma City)'에서 '5·18'을 언급, 외랑둥이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정확하고 많은 K팝 정보전달, K팝 관심 환기

물론 K팝을 통해 한국어가 알려지는데 과제도 있다. 다른 K팝 팀들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방탄소년단의 신드롬급 인기로 K팝이 이 팀의 열풍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버진 레코드 아메리카의 CEO 등을 역임한 필 콰르타라로 트라이포드 파트너스 대표도 최근 '서울국제뮤직페어'(뮤콘)을 통해 한국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방탄소년단이 K팝 그 자체이고, K팝에는 오로지 방탄소년단만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모든 K팝 팀의 팬클럽이 아미 같을 수는 없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등에서 국외 한류 팬클럽의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자생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창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오역 등으로 인해 잘못된 정보와 오해가 생기는 것도 문제다. 한국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심어줄 수 있다.

중견 K팝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한류 팬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힘 입어 한류 콘텐츠가 확산된 점도 크다"면서 "그들이 K팝 관련해 더 많은 정보와 올바른 정보를 접하기 위해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한 올바른 관심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노력으로 제2의 방탄소년단이 나올 수는 없다. '제1의 누구'가 나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K팝을 알리는데 공헌하고 있는 제프 벤저민 미국 빌보드 K팝 칼럼니스트가 최근 한국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짚은 점을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성공비결로 주체성을 꼽았다.

"방탄소년단처럼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자기 모습을 버리지 않고 밀고 나갔습니다. 미국 방송에 출연한다고 퍼포먼스를 바꾸거나 무조건 영어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받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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