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의 워런… 흙수저 여전사냐, 미국판 강남좌파냐

조선일보
입력 2019.10.10 03:44

[美 민주당 대선후보 전국 여론조사서 바이든 제치고 첫 1위]
대학 학자금 빚 탕감·부유세 신설… 거대 IT 기업 해체 등 좌파 공약
중도·저학력층,남성·유색인종 등 바이든 지지 세력 눈에 띄게 흡수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 졸업… 중산층 파산 연구로 이름 알려
'시골 흙수저' 부각 전략 먹혀들어

엘리자베스 워런(70) 상원의원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전국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조 바이든(76) 전 부통령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9일 각종 여론조사를 집계해 보여주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9월 23일~10월 7일 실시한 각종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 평균은 워런 26.6%, 바이든 26.4%로, 워런이 처음으로 순위를 뒤집으며 1위로 올라섰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최근 불거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지지율이 계속 하락세여서 워런이 '2020년 트럼프 대항마'로 입지를 굳혀가는 분위기다.

엘리자베스 워런
당초 워런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출신이면서 사회주의에 가까운 이념으로 무장했다는 점에서, 백인 엘리트 등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강남 좌파)'이나 대도시 여성 유권자에게 국한된 인기를 넘지 못할 것이란 회의론이 많았다. 그러나 바이든을 지지했던 민주당 내 중도층이나 저학력층, 남성, 유색인종의 지지를 최근 눈에 띄게 흡수하고 있다. '대중과 유리된 엘리트' 이미지를 버리고 '시골 흙수저'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란 개인사를 부각하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워런은 최저임금 인상부터 건강보험 공공화, 서민·중산층 보육 지원과 대학 학자금 빚 탕감을 핵심 공약으로 앞세우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유세 신설, 거대 IT 기업 해체를 내걸고 있다. 자산 5000만달러(약 600억원) 이상의 상위 0.1% 부자에게 2%의 부유세를 거두면 10년간 약 3조달러(약 3600조원)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고, 이를 재원으로 중산층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워런의 논리다.

그가 자서전('The Fighting Chance') 등에서 밝힌 인생행로를 보면 이런 좌파 정책의 뿌리가 보인다. 워런은 1949년 보수적인 중남부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영업직인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의료비 폭탄을 맞게 되자 어머니가 최저임금 일용직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워런도 13세 때부터 식당 종업원을 했다. 고교 때 오클라호마주 '토론왕'으로 뽑혀 조지워싱턴대 장학생에 선발되면서 집안에서 처음 대학생이 됐다. 그러나 1968년 19세에 결혼해 남편 짐 워런이 직장(IBM)을 구한 텍사스로 이주하느라 중퇴했다.

워런은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며 한 학기 등록금이 50달러에 불과한 주립 휴스턴대를 다녔고, 남편을 따라 뉴저지로 옮겨 주립 럿거스대 로스쿨을 다녔다. 잠시 언어치료사로 일했던 특수학교에선 임신했다는 이유로 권고사직당했다고 한다. 변호사 자격을 따고도 육아 때문에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만 찾다가, 파산법 연구로 학계에 진출했다.

워런은 자신이 가정에만 충실하기를 원한 남편과 10년 만에 이혼했다. 별거 중에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현 남편 브루스 맨(69)을 만나 1980년 재혼했다. 당시 7세·3세인 아이들을 위해 전 남편의 성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현재 딸 아멜리아(48)는 경영 컨설턴트, 아들 알렉산더(44)는 컴퓨터 공학자다.

워런이 직접 체험한 서민층 의료비와 보육·교육비, 주택비 부담을 토대로 파산법 연구에 뛰어든 뒤, 실제 1990년대 금융권 규제 완화로 대출과 신용거래가 급증하며 '개인 파산'의 시대가 도래했다. 워런은 중산층 파산의 구조를 실증적으로 파헤쳐 스타 학자로 떠올랐다. 하버드에서도 손꼽히는 고액 연봉을 받고, 기업 자문으로도 수백만달러를 벌었다.

그가 2003년 딸과 함께 전국 중산층 2000여 명을 인터뷰해 쓴 책 '맞벌이의 함정'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는 순간 파산 위험이 3배 증가하니 아이를 낳지 말라" "저축하지 말고 학군 좋은 곳에 대출 끼고라도 집부터 사라" "아이를 데리고 이혼했다면 되도록 빨리 재혼하라. 파트타임 직종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쓴 구절이 최근 논란이 됐다. 워런 측은 미국의 허술한 복지·교육 체계와 여전히 취업 시장에서 불리한 여성의 지위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고 반박한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시절 워런은 금융 소비자 운동을 주도하며 오바마 정부 때 월가가 수억달러를 쏟아부은 반대 로비를 뚫고 '기업 저승사자' 격인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설치를 이끌어냈지만, 정작 본인은 재계와 공화당의 반대로 초대 국장에 앉지 못했다. 그러나 환갑이 넘어 2011년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정계 입문 10년도 안 돼 대선까지 넘보고 있다.

일각에선 워런을 두고 "전문직 엘리트에게 포퓰리즘을 파는 정치인"(뉴요커) "우파 포퓰리스트 트럼프와 좌파 포퓰리스트 워런의 대결이 될 수 있다"(BBC)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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