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허송세월' 달 궤도탐사선 … 550→610→664→678㎏, 무게 정하는데만 4년

조선일보
입력 2019.10.10 03:00

[한국만 뒷걸음질 치는 달 탐사]
항우연, 궤도선 무게 내부합의 못봐 설계도조차 아직 확정하지 못해… 지난달 678㎏ 결정후 개발 또 연기
무게 늘면서 임무 기간 줄어들어… NASA 극지촬영 카메라 半만 사용… 미국과 공동 개발 기회 놓칠 우려
달 탐사 성공 여부 불투명하자 항우연선 핵심인력 투입하지 않아… 과기부서도 단 두 課에서만 맡아

이영완 논설위원
이영완 논설위원
지난달 19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시험동에 들어서자 견학을 온 남녀 고등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2층 복도에서 유리창을 통해 완성 단계인 차세대 중형 위성 1호를 보고 있었다. 무게 500㎏의 이 위성은 작은 크기지만 카메라 해상도는 1t이 넘는 위성에 필적하는 50㎝ 해상도를 갖고 있다. 항우연은 2015년부터 이 위성을 개발해 내년 5월 발사할 예정이다. 바로 옆방에선 또 다른 위성이 진동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달 주위 궤도를 돌며 탐사할 '한국형 시험 달 궤도선(KPLO)'이다. 하지만 개발이 시작된 지 4년이 다 되도록 궤도선은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발사 일정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고등학생들은 복도를 지나면서 창 너머로 보이는 달 궤도선 모형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10일 당초 2020년 말로 예정됐던 달 궤도선 개발 일정을 2022년 7월까지 연기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달 궤도선과 착륙선 발사 일정을 각각 2년, 10년 미룬 데 이어 다시 달 탐사 일정을 늦췄다. 지난달 궤도선 개발은 2016년 시작됐다. 총사업비는 1978억원이다. 발사 연기에 따라 288억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는 올해 중국, 이스라엘, 인도가 잇따라 달에 착륙선을 보내는 등 전 세계적으로 달 탐사 열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한국만 뒷걸음치고 있다.

달 궤도선 설계도조차 확정 못해

당초 계획대로 내년 말 달 궤도선을 발사하려면 벌써 상세 설계도가 나와야 했다. 하지만 항공우주연구원은 아직 설계도를 확정하지 못했다. 이날 연구원들은 진짜 위성이 아니라 무게와 구조만 비슷하게 만든 모형인 더미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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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위성시험동에서 연구원들이 달 궤도선의 구조 개발 모델에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내년 말까지 달 궤도선을 발사할 계획이었지만 개발 과정에서 무게를 결정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으면서 발사 일정을 2022년 7월로 연기했다. /대전=신현종 기자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지난 4년 동안 달 궤도선 무게를 두고 항공우주연구원 내부에서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달 궤도선 무게를 550㎏으로 하기로 했는데, 사업단장은 이를 맞출 수 있다고 하고 일선 연구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라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과기정통부는 올 1월에야 외부 전문가들로 점검 평가단을 구성해 이 문제를 논의해 8개월 만에 달 궤도선 무게를 678㎏으로 확정했다. 이와 함께 개발 일정도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궤도선 무게를 550㎏으로 잡은 것은 기술적 논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였다. 550㎏은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탑재할 수 있는 화물 무게다. 누리호는 첫 발사가 2021년으로 잡혀 있어 2020년 발사 목표인 달 궤도선과 상관이 없다. 달 궤도선은 화물 탑재 능력이 훨씬 뛰어난 미국 스페이스X사의 팰컨 로켓으로 발사할 예정이다. 한 위성 전공 대학교수는 "누리호는 지구 관측용 위성만 쏠 수 있는 성능인데 항우연이 이를 달 궤도선과 연결함으로써 심우주 탐사용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달 궤도선 무게를 억지로 누리호에 맞추면서 개발 과정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탑재 장비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2016년부터 궤도선의 설계 무게가 계속 늘어나면서 이러다간 연료 부족으로 달까지 가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달 궤도선에는 전자통신연구원, 천문연구원 등 국내 연구진의 탐사 장비 5개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섀도캠이라는 카메라가 장착된다.

한국의 달 탐사 목표
결국 달 궤도선 무게는 지난해 9월 610㎏에서 올 3월 664㎏을 거쳐 이번에 678㎏으로 확정됐다. 한국형 발사체와 달 궤도선을 무리하게 연결한 탁상공론 때문에 그동안 허송세월한 것이다.

미국과 추진하던 달 탐사 계획 불확실

궤도선 무게가 늘어나면서 미국과 추진하던 달 탐사 계획도 불확실해졌다. NASA는 자신들의 달 극지 탐사를 앞두고 우리나라 달 궤도선에 햇빛이 비치지 않는 극지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해 운영하기로 했다.

궤도선 무게가 늘면 연료도 그만큼 많이 쓴다. 자연 임무 기간이 줄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항우연은 궤도 수정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달 궤도선은 원래 달의 남·북극을 고도 100㎞로 1년 돌기로 했는데, 이번에 타원궤도, 원궤도 복합 운영으로 바꿨다. 처음 달 궤도에 진입하던 대로 고도 100~300㎞의 타원궤도를 9개월 돌면서 연료 소비를 최소화하다가 마지막 3개월은 추력기를 분사해 100㎞ 원궤도로 들어가 임무를 한다는 것이다.

바뀐 궤도로는 NASA 카메라를 반만 쓸 수 있다. 남극은 원래 고도로 궤도선이 지나가 문제가 없지만 북극은 고도가 3배나 높아져 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원호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NASA와 협의 중이나 NASA 임무 수행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과기정통부의 달 궤도선 계획 수정 발표 직후 미국 측 장비 개발자는 "궤도가 바뀌면 최소한의 과학적 임무 달성도 불가능하다"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함께하는 우주개발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릴 위기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에도 미국에서 국제우주정거장 참여를 권유받았으나 분담금 1500억~2000억원 때문에 포기했다. 한번 발사하고 끝난 우주로켓 나로호 개발에서 우리가 러시아에 준 돈이 2200억원이었다.

우주개발의 주변부로 몰린 달 탐사

사실 달 탐사는 항우연 내부에서 핵심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달 탐사 사업단은 그동안 조직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원장들은 핵심 인력을 달 탐사에 투입하지 않았다. 한국형 발사체와 지구 저궤도 위성 개발에는 수백 명씩 연구원이 투입됐지만 달 궤도선은 20여 명이 전부였다. 로켓이나 지구 관측용 위성 개발은 목적이 뚜렷해 돈과 시간만 있으면 그대로 굴러가지만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달 탐사는 마지못해 하는 형국이었다.

정부 관리도 부실했다. 과기정통부는 단 두 과(課)에서 우리나라 우주개발을 맡고 있다. 그나마 담당 과장이 1년도 안 돼 계속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우주개발에서 정부 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008년 우주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상용 위성이나 로켓 개발은 기업과 대학에 넘기고 위험 부담이 큰 우주 탐사로 임무를 전환했다"고 말했다. JAXA가 최근 인류 최초로 소행성에 무인 탐사선을 착륙시킨 성과를 거둔 것이 그 결과이다. 이창진 건국대 교수는 "우주 선진국들은 지구 관측 중심에서 심우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달 탐사는 우리가 신우주 경쟁 시대에 진입할지 알아볼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 개발, 항우연 대신 독립적 행정기구인 '우주청'이 맡아야"


우리나라 우주개발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정부 연구소인 항공우주연구원 대신 전문성이 있고 위상이 독립적인 행정 기구인 우주청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가 미국 주도의 달 정거장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면서 우주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우주개발 담당 조직이 두 과(課)가 전부인 상황에서는 국가 간 우주개발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인공위성이나 우주 발사체를 활용하는 부처도 국방부·환경부·해양수산부·기상청으로 계속 확대되는 상황에서 과기정통부가 여러 부처의 의견을 조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중심의 우주개발이 확대되는 상황이지만 과기정통부의 과제는 여전히 연구 개발 틀 안에 있어 기업 참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탁민제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지난달 5일 국회 공청회에서 "우주청은 부처 간 의견 조율을 위해 총리실 산하 우주개발처 또는 우주위원회로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표했다.

일부에서는 독립 우주청 설립은 법령 개정 등으로 상당한 시일이 필요해 다음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나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우주 담당 국(局) 신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 우주청을 둔 국가는 70여 곳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처럼 기존 우주 선진국은 물론, 볼리비아·페루·싱가포르도 우주청이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14년 우주청을 신설하고 화성 탐사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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