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세종학당 한국어 선생님 44%가 외국인… 학생 몰려 대기자 200명인 곳도

조선일보
입력 2019.10.09 04:18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각국 상황에 맞춰 한국어 가르쳐
세종학당 교원 1인당 학생 100명

케냐 사람인 필리 왕게치 은디앙구이(29)씨는 올해부터 케냐 나이로비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숙명여대 석사를 졸업하고 롯데제과와 서울출입국사무소에서 일했을 정도로 한국어에 능숙하지만, 10년 전엔 그도 나이로비 세종학당 학생 중 한 명이었다. 필리씨는 "처음엔 학교 끝나고 할 게 없어 다니기 시작했다"면서 "무슨 뜻인지 몰라도 일단 한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쉽게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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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린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에 참석한 세종학당 선생님들. 케냐의 은디앙구이(왼쪽에서 둘째)씨와 인도네시아의 유니아스티(왼쪽에서 넷째)씨는 유학 후 자국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세종학당
필리씨는 지난 7월 전 세계 세종학당 선생님들이 모이는 '2019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에 참여했다.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탈춤과 강강술래까지 배웠다. 나이로비 학당의 1호 케냐인 선생님이 된 그는 "한국 카이스트(KAIST)가 케냐판 카이스트를 짓고 있어서 학생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서 "현지 사람이 가르치면 'ㅋ'을 케냐어로 어떻게 똑같이 발음할 수 있는지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올해 서울에서 열린 한국어교육자대회는 열정 넘치는 외국인 선생님들로 가득했다. 현재 전세계 세종학당 교원 670명 중 44%가 외국 국적이다. 한글 도장 만들기 수업에선 카롤리나 자카라우스카이테(24)씨가 재빠른 눈썰미로 자음과 모음을 찾아 자신의 이름을 완성시켰다. 카롤리나씨도 4년 전엔 리투아니아 빌뉴스 세종학당의 학생이었다.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배워 2017년부터는 운영요원으로 빌뉴스 세종학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전통 문화를 좋아해서 세종학당을 다니며 전통춤, 꽹과리, 서예, 태권도까지 배웠다"면서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유튜브에서 한국 길거리 인터뷰 영상을 많이 봤다"고 했다. "리투아니아 역사를 보면 항상 규칙을 더 만들어서 언어가 더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모두를 위해 쉽게 공부할 수 있는 한글을 만들었어요!"

한글날을 앞두고 한국에 온 세종학당 학생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를 골라 손 글씨로 적었다.
한글날을 앞두고 한국에 온 세종학당 학생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를 골라 손 글씨로 적었다. 세종학당 학생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단어는 1위 '사랑', 2위 '안녕', 3위 '아름답다'였다. /세종학당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학당의 헤를린다 유니아스티(27) 선생님은 "떡볶이, 김밥, 핫도그 만들기 같은 수업이 인기가 좋다"면서 "학생들이 한국 예능을 많이 봐서 제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헐, 대박!' 같은 말을 쓴다"고 했다. 수라바야 학당엔 200여명의 학생이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회사가 많아지면서 취업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도 덩달아 늘고 있다.

세종학당에서 실력 있는 한국어 선생님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한국어 수요를 따라잡긴 역부족이다. 요즘은 정원 초과로 한국어 수업을 듣지 못하는 대기자까지 속출한다. 세종학당이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64.4명이었던 교원 1명당 학생 수는 2018년엔 99.7명으로 급증했다. 중국·베트남·캐나다 등 일부 학당에선 대기자만 100~20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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