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프·독 SLBM 안보리 회부하자… 펄펄 뛴 北, 침묵한 美

조선일보
입력 2019.10.09 04:01

- 유엔 안보리 어제 긴급회의
북한, 안보리 주도국 비난하며 "불순한 움직임의 배후엔 미국"

'북한과 대화의 끈' 이어가며 재선 준비하려는 트럼프 향해 추가제재 반대할 것 요구한셈
美 어정쩡한 태도에 한국도 침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현지 시각) 긴급회의를 열어 최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문제를 논의했다. 한·미가 북 SLBM 발사를 되도록 문제 삼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가 역력한 가운데 북한은 안보리 회의를 주도한 독일·영국·프랑스를 겨냥해 "배후에 미국이 있다"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발끈했다.

안보리 긴급회의 결과는 9일 0시(한국 시각)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추가 제재에 소극적이라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 논의 등 실효성 있는 조치가 나오긴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심상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안보리 의장국의 대북 규탄 성명 정도가 나올 수 있다"며 "이마저도 미국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고 했다. 성명 채택이 무산될 경우 독·영·프 등 일부 이사국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북한을 규탄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독일은 지난 2일 북한이 신형 SLBM인 북극성-3형을 발사해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자 영국·프랑스와 함께 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북한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이 지난 2일 원산 앞바다에서 발사되고 있다(왼쪽 사진).
북한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이 지난 2일 원산 앞바다에서 발사되고 있다(왼쪽 사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 문제로 긴급회의를 열기로 하자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 7일 긴급 외신 인터뷰를 갖고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오른쪽 사진).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로이터 연합뉴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7일(현지 시각) 로이터·APTN 등 영미권 매체 긴급 인터뷰에서 북극성-3형 발사에 대해 "자위적 조치로 주변국 안보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며 "이를 안보리 이슈로 삼으려는 건 위험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또한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불순한 움직임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며 "안보리에서 우리의 자위적 조치를 이슈로 제기한다면 그것은 주권을 방어하려는 우리의 욕구를 더욱 자극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북한이 올해 미사일 도발과 관련한 안보리 소집을 이유로 유럽 국가들을 비난한 것은 몇 차례 있었지만 미국까지 거론한 건 처음이다. 외교가에선 "스톡홀름 미·북 실무 협상이 결렬된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김성은 "안보리 회의 소집은 미 트럼프 행정부의 동의 없이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안보리의 모든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겠다"고 했다. 미국을 향해 안보리 회의 소집에 반대하거나, 회의가 열리더라도 대북 규탄 성명 채택이나 추가 제재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탄핵 위기 속에 대선 유세를 치러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의 '안정적 관리'를 원한다"며 "북과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려 하는 트럼프 행정부로선 북의 요구가 꽤 신경 쓰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난처한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북한의 SLBM 발사, 지난 5일 '스톡홀름 노딜' 이후에도 트위터 게시글을 수십 건 올렸지만 북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는 한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SLBM 발사와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7일), 국무회의(8일) 등 대외 메시지를 발신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북한 SLBM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도발에 대응해야 할 국방부, 안보리 주무 부처인 외교부도 북극성-3형 발사에 대해 "안보리 결의 위반"이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특히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극성-3형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라고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여러 기관에서 말해 추가할 게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비슷한 질문이 3~4차례 이어졌지만 김 대변인은 "다른 분 질문 받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전직 외교부 차관은 "외교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명백히 제재 위반인 북극성-3형 발사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며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북한의 제재 위반 여부를 철저히 감시·고발하던 한국 정부가 '북한의 법률 대리인'으로 전락한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