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정권이 주는 '셀프 면죄부'

입력 2019.10.09 03:15

조국 일가의 문제는 제도 아닌 개인 탓
핑계와 구실 안 통하는 사회 분위기 만들어야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한완상 전 부총리가 며칠 전 라디오에 나와 "조국 가족에게 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과연 부끄러움 없이 그들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있는지"라고 말했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사람들이 돌로 쳐 죽여도 되느냐 묻자 예수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한 말이다. 예수는 여자에게도 중요한 말을 했는데 한 전 부총리는 이 말을 빼먹었다. 예수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예수는 돌을 든 이들의 자제만 요구한 게 아니었다. 돌 맞을 짓을 한 여자에게도 자숙을 요구했다. 하물며 죄지은 여인에게 돌을 들어 남을 정죄할 권한 같은 것은 준 적도 없다. 한 전 부총리는 간음한 여자를 등장시켜 조국 가족에게 돌 던지는 세태를 비판했지만, 필자는 예수가 여인에게 한 말의 취지에 걸맞게 조국 장관에게 권하고 싶다. "물러나시라. 그리고 공직 꿈 같은 것, 다시는 꾸지 마시라."

조국 장관과 그 가족에게 돌 던질 사람이 있느냐는 항변의 바탕에는 "당시 사회제도와 관행이 그랬지 않으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잘못한 이의 행위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과 사회 시스템을 지적하는 태도다. 조 장관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그런 입장에 서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초 대국민 담화에서 "이번에 공평과 공정의 가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평범한 국민이 느끼는 상대적 상실감을 절감했다"면서도 "국민을 좌절시키는 기득권과 불합리의 원천이 되는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조국 장관의 딸 입시 문제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자 그들이 저지른 반칙과 특권은 언급하지 않고 제도를 탓한 것이다. 조국 가족은 제도 탓이라는 정권의 면죄부를 받아 들었다.

세상에 허점 없는 제도는 없다. 이 정권 표현대로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특권에 기대고 반칙을 쓴 사람을 배제하거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1990년 9월 24일 자신의 스텔라 승용차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며 황금만능주의와 도덕적 타락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란 점을 강조하는 윤리회복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을 주관한 박정훈 당시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으로 사회를 다스리는 것은 바위로 잡초를 누르는 것과 같다. 시간이 흐르면 바위 틈새로 잡초가 다시 비집고 나오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그때 이미 탈법과 꼼수를 동원해 놓고 제도가 그랬기 때문이라고 핑계 대는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검찰을 개혁하자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만으로 개혁을 이룬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대는 것은 제도가 뒷받침해줘서가 아니다. 검찰 독립성 훼손을 감시하는 국민의 눈이 정권의 수사 훼방을 막는 방패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를 제도의 결함이 아닌 사람 탓이라고 진단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극단적이고 위험한 인사가 인기를 등에 업고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하므로 정치 지도자들이 나서라고 주문한다. 정당의 책임 있는 리더라면 대중적 인기가 아무리 높고 선거 승리에 유리한 인물이 나타나도 그가 민주주의에 해가 될 사람이라면 사전에 제거해야 하며, 그와 손잡는 것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정권은 그 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지 않나 자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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