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억원 기부한 美 대학에 '김원숙 칼리지' 생겼죠

조선일보
입력 2019.10.08 03:37

화가 김원숙·남편 클레멘트씨, 美 첫 한인 이름 딴 단과대 주인공
"나 '김원숙 예술대학' 나왔어~ 미국인들이 이렇게 자랑했으면"

"미국 중산층 사람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한 번쯤 꿈꿨어요. '너 무슨 대학 나왔어?' '나? 김원숙대학 나왔어!' 하는 거죠. 한국인의 이름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불리다 보면 한국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거라고 믿었어요."

재미(在美) 화가 김원숙(66)씨의 말에 한국계 미국인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67)씨가 옆에서 덧붙였다. "아내가 전형적인 한국인 이름이어서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이름이 미국 단과대에 붙을수록 효과가 클 테니까요."

미국 공립대학에 최초로 한인 이름을 딴 대학이 생겼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ISU)가 최근 이 대학 소속의 예술대학 이름을 '김원숙 칼리지(Kim Won Sook College of Fine Art)'로 바꾼 것이다. 김씨는 모교인 이 대학에 남편 클레멘트씨와 함께 1200만달러(약 143억원)를 기부했다. 지난 4일 서울을 찾은 김원숙씨와 클레멘트씨는 "부부 이름을 다 넣어 '원숙-클레멘트'대학으로 이름을 붙일까도 생각했었으나 결국 '김원숙'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봤다"고 했다. 남편 클레멘트씨의 고집이었다. "꼭 한국인의 순수한 이름이어야 한다는 거죠. 일리노이주립대는 미국 중심지에 있고 학생 상당수가 백인이에요. 이런 대학에 한국인 이름이 붙는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봤어요. 사람들이 한국을 '전쟁과 가난을 벗어난 나라'를 넘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고 기억한다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죠."

지난 4일 서울 남산에서 만난 화가 김원숙(왼쪽)씨와 한국계 미국인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씨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김원숙 예술대학’ 명명식에 쓰였던 발표문을 들고 활짝 웃었다.
지난 4일 서울 남산에서 만난 화가 김원숙(왼쪽)씨와 한국계 미국인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씨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김원숙 예술대학’ 명명식에 쓰였던 발표문을 들고 활짝 웃었다. /오종찬 기자
김씨 부부는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김씨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1971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전액 장학금을 받고 ISU로 유학 가 1978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과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 뉴욕 현대미술관(MoMA), 워싱턴 국립 여성예술가박물관, 바티칸미술관 등에서 작품 전시를 했고, 1995년엔 유엔 후원 작가로 선정돼 작품 '보름달 여인'이 우표로 제작되기도 했다. 당시 우표를 판매한 수익 전액은 유니세프에 기증했다.

남편 클레멘트씨는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6·25전쟁 통에 버려져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1958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복강경 수술 도구 등을 개발해 미국 특허 52개를 보유하고 있고, 의료 기기 회사 '멕트라 랩스'의 대표를 지냈다.

부부가 학교에 기부한 돈은 클레멘트씨가 회사를 팔고 얻은 수익이다. 클레멘트씨는 "경영에서 물러나 발명가로서 남은 생을 살길 원해서 회사를 정리했다"면서 "내게 한국은 영원한 어머니의 나라이니, 이 돈이 한국이란 나라의 이미지를 위해 쓰이길 또한 바랐다"고 했다.

보통 큰돈이 생기면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한다. 김원숙씨는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의 삶은 뜻밖에도 굉장히 비슷하다. 하루종일 돈 걱정에 잠을 못 자고, 돈 때문에 남을 의심한다. 우린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아서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김원숙 칼리지'엔 김씨가 기부한 자신의 예술 작품 수십점도 설치됐다. 김씨는 "내 이름으로 단독 미술관을 짓는 것보다 누구나 오가며 공짜로 작품을 볼 수 있는 대학에 작품을 거는 게 더 좋았다"고 했다. "명예도 돈도 쥐면 사라지고, 놔주면 커져요. 더 열심히 벌어 또 다른 대학에도 기부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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