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의 '말글살이' 세종대왕께 부끄럽지 아니한가

조선일보
  • 김미형 한국공공언어학회 회장·상명대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입력 2019.10.08 03:13

김미형 한국공공언어학회 회장·상명대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김미형 한국공공언어학회 회장·상명대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또다시 한글날이 돌아왔다. 작년 한글날을 기억하며 대한민국의 말글살이가 1년 동안 얼마나 좋아졌는지 돌아보았다. 지난해에도 한글날을 즈음해 올바른 말과 글을 써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다. 그 일환으로 공문서의 오류를 찾아 개선안을 건의했고, 공공 언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연구해 논문도 발표했다. 국어기본법 제10조에 의해 국어의 발전 및 보전을 총괄하는 국어책임관이 18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변화에도 우리의 언어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겨나는 용어를 우리말로 쉽게 다듬어 사용하려는 의식이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임금 세종은 국민과 소통할 수 없음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훈민정음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문자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문자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쉬운 우리의 문자 한글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을까? 지식정보사회이자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는데, 그것이 제대로 된 소통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저는 요즘 대중매체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못 알아듣는 말이 참 많아요"란 말을 자주 듣는다. 연세 많으신 내 어머니는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면 저게 무슨 말이냐며 자주 묻더니 요즘엔 아예 묻지 않는다. "당신의 SNS는 ON AIR입니까"라는 공익광고를 보면서 그랬고 '매니페스토'와 '패스트트랙'이 연일 대중매체를 오르내리면서 그랬다.

세종 임금이 그러했듯이 '소통'은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의 사용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첫걸음이자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바르고 쉽고 고운 말을 사용해야 한다. 정부, 언론, 나아가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

한국어와 외국어는 기본적으로 음절 구조가 달라서 외국어를 그대로 쓰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그 결과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불통의 대한민국이 된다. 이것은 마치 피부에 맞지 않는 화장품을 써서 부작용이 일어나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민을 위한 정책에 '에코, 마일리지, 바우처, 마이크로크레디트'란 말을 사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정부가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블랙아이스·포트홀, 옴부즈맨, 부진정 연대채무, 패스트트랙, 규제 샌드박스, 실드, R&D'처럼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에 관심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반한 사회에서 쉬운 법령 만들기나 쉬운 전문용어 사용하기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아무리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매일같이 새로운 용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말로 다듬어 그 말을 널리 보급해야 한다. 진정한 국민 소통을 원한다면 정부에서 이를 시행할 적극적인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국민 보도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일이 제대로 이루어져 내년 한글날에는 우리의 말글살이가 제법 건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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