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서 찾은 '조선말 큰사전' 원고 2만장… 6·25땐 최현배 집 마당에 묻었다가 파내"

조선일보
입력 2019.10.07 03:00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 인터뷰 "영화 '말모이'에 내 손 나와요"

권재일 한글학회장이 1945년 서울역에서 발견됐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들고 있다.
권재일 한글학회장이 1945년 서울역에서 발견됐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들고 있다. /김지호 기자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영화 '말모이'에선 일제 경찰에 쫓기던 주인공이 서울역 창고에 사전 원고를 숨긴다. 실제로 1945년 9월 8일,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2만여 장의 '조선말 큰사전' 원고 뭉치가 발견됐다. 영화와 달리 어마어마한 분량의 원고 뭉치는 고등법원으로 보내려던 조선어학회 사건 증거물로, 창고에 방치돼 있었다.

현재 큰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를 계승한 한글학회에 남아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원고를 넘기는 손이 권재일(66) 한글학회장의 손이다. 권 회장은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로 국립국어원장을 지냈다.

―당시 모두가 사전을 찾지 못할 거라고 예측했다.

"투옥된 학자들이 해방 후 8월 17일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원고를 수소문했고, 창고에서 짐을 정리하던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기적처럼 발견했다."

―6·25 때는 무사했을까.

"전쟁이 터지자 최현배 선생의 집 마당에 원고를 묻었다. 피란 갔다 와 땅속에서 원고를 꺼내 1957년에서야 '큰사전'이란 이름으로 6권이 완간됐다. '큰사전'은 억압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켰을 뿐 아니라 그 이후 나온 수많은 국어사전의 저본(底本)이 되었다."

―숨은 주역들도 있을 것 같다.

"말모이의 중심은 학생들이었다. 여름방학 때 숙제처럼 각 학교 학생들이 지방에 내려가서 지역 말을 조사해왔다."

―인터넷 검색으로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요즘에도 사전이 필요할까.

"사전은 언어를 지키고 가꾸는 수단이다. '물레'라는 단어를 사전에 기록하지 않으면 생활 속 물레가 사라지면서 그 문화 자체도 사라지게 된다."

―어떤 말들이 사라져가고 있나.

"과거 문헌에 쓰였던 말이나 방언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흔적은 남아 있지만, 그 뜻은 사라져가는 말도 많다. '온 세상' 할 때 '온'은 숫자 100을 뜻하는 말이고, '골백번' 할 때 '골'은 숫자 1만을 뜻하는 말이었다."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을 만든다.

"불필요하게 외국어를 쓰는 경우가 참 많다.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참여하면 뜻깊을 것이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맞춤법을 잘 모르는 사람부터 전문가까지 힘을 합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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