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 '성동격서' 전술 북한의 진짜 노림수

조선일보
  •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입력 2019.10.05 03:17

SLBM 쏜 북한, 이번 스톡홀름 회담서 성공 여부에 관심 없어
대사 역임한 北 협상 책임자 여생 편히 살 수 있는데 무리해서 타결안 안 만들 것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이번에 미국과 북한이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후 처음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마주 앉으면서 연내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북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들여다보면 돌파구가 열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 장소·날짜까지 합의해 놓고 불쑥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해 협상 성공 여부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오만함을 보였다.

미국과 대화를 3차례의 정상 상봉 수준까지 승화시켰던 북한은 이번에 미국과 처음 만나는 듯 실무협상에 앞서 예비 접촉이라는 매우 이례적인 과정을 끼워 넣었다. 외교에서 예비 접촉은 한번 만나본다는 의미인데 협상 장소에 도착해 예비 접촉 단계를 만든 것은 미국 입장이 변했는지 확인해 보고 변화가 없으면 짐을 싸 돌아간다는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이다. 북한 대표단은 베이징에서 스톡홀름으로 떠나면서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온다고 해서 협상장으로 간다"고 했다. '싱가포르 합의'대로 미·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논의를 먼저 한 다음 비핵화 문제를 단계별로 토의해야 한다는 북한의 '단계적 해법'을 미국이 받아들이면 좋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상 실패 책임을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못한 미국에 돌리면 된다는 심산이다.

문제는 미국이 '계산법'을 바꾸었는가 하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을 경질하고 리비아식 모델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 비핵화의 최종 그림을 먼저 그리는 것을 협상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입장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보다는 트럼프의 정치 일정에 맞춰 내년 대선까지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외교 대화의 장에 묶어 두려는 데 있어 보인다. 북한도 미국의 이러한 속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스톡홀름으로 간 것은 북한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을 것이다.

지금 김정은의 동선을 보면 연내 미·북 정상회담에는 별로 의욕이 없어 보인다. 북한 사람치고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를 풀어줄 것이라고 믿는 바보는 없다. 김정은의 최대 관심은 북·중 외교 관계 수립 70주년을 계기로 다시 베이징을 방문해 무상 원조를 받아 북한의 힘든 고비를 넘기는 것이다. 지금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북한이 실무협상에 응한 것은 미국과 협상하는 흉내라도 내야 김정은의 베이징 입성을 승인할 수 있다는 중국의 압력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평양을 방문해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서라고 권고했다가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귀국하는 수모를 당했다. 며칠 전 왕이는 유엔총회에서 미·북 사이의 비핵화 협상 재개를 독촉하면서 협상의 진전을 위해 대북 제재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으로서는 미국과 협상해 보라는 시진핑의 요구를 한 번도 들어주지도 않고 미국이 '계산법을 바꾸지 않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경제 원조를 달라고 할 수는 없다.

필자에게는 지금까지 미국과의 협상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던 북한이 갑자기 협상 장소와 시간까지 먼저 공개하면서 선수를 치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협상 절박감보다는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디딤돌을 빨리 마련하려는 절박감으로 보인다.

이번 협상에서 어떤 타결이 나오기 힘든 것은 협상에 나오는 북한 외교팀의 자세와도 관련된다. 이번 북한 외무성 협상팀은 지난번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협상 대표였던 김혁철이 경질되고 김계관 외무성 1 부상이 고문으로 내려앉는 과정을 다 목격한 인물들이다. 김정은은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올 때만이 3차 정상회담에 나가며 북한의 입장이 담겨진 문건에만 사인하겠다고 했다. 실무팀이 김정은의 이러한 눈높이에 맞춘 문건을 미국과 만들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번 협상 책임자 김명길은 북한 외무성 1부상 최선희보다 상급자였고 외교관으로서 마지막 자리인 대사까지 한 인물이어서 실책만 범하지 않으면 영예롭게 퇴직해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인물이다. 그가 과욕에 사로잡혀 모험이나 융통성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결국 이번 스톡홀름 협상이 북한 비핵화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 대한민국에 득이 되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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