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직원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 조수용 카카오 대표

입력 2019.10.05 07:00 | 수정 2019.11.11 09:54

카카오 대표 조수용 "선한 직원과 골칫덩이? 딱 보면 알아"
"누가 승진하고 떠나는가가 조직 문화의 전부"
"여민수와 닮아… 숫자보다 우정이 더 중요, 사심 없어."
"카카오는 공기업 수준의 미션… 혁신 기회, 사명감 높아"
"믿어주는 사람 있었기에 능력 폭발… 똘끼로 버텼다"
"브랜드의 핵심은 빼기… 명상과 요가로 자기객관화 훈련"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46세).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2003년 네이버에 조인했다. 2010년 부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브랜드 컨설팅 회사 JOH를 창업했다. 김범수 의장의 요청으로  2016년, 카카오에 합류했다./사진=남강호 기자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46세).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2003년 네이버에 조인했다. 2010년 부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브랜드 컨설팅 회사 JOH를 창업했다. 김범수 의장의 요청으로 2016년, 카카오에 합류했다./사진=남강호 기자
조수용을 처음 만난 건 2016년 가을,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카카오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당시 나는 호텔, 잡지, 식당, 가방, 부동산 개발 등 손을 대는 것마다 히트시키는 그의 감각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애초에 크리에이티브 집단 JOH의 대표로 조수용을 조명하고자 했으나, 시기상 카카오를 향한 그의 계획과 그림까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2003년부터 창립 멤버로 네이버 최연소 임원이었던 그는 2010년 한창 잘 나갈 때 사옥을 짓고 나왔다. 이후 지독하게 아날로그적인 자기 사업에 집중했다.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B’나 영종도의 네스트호텔 등은, 그가 네이버 시절에 만든 초록 검색창이나 사옥 그린팩토리만큼이나 ‘조수용'이라는 이름에 가치를 더했다.

왜 조수용이 손을 대면, 온라인 세상에도 오프라인 세상에도 새길이 생기는 걸까. 아날로그 대륙의 최고 시민권자이자 동시에 디지털 신대륙의 권력자인 조수용. 양 대륙에 다리를 걸치고도, 버거운 기색이 전혀 없는 그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우리는 몇 세기 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한 놀라운 혁신과 기회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기술의 힘으로, 리얼 월드의 삶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IT기술과 네트워크의 힘이 진짜 사람의 삶을 바꿔야 하는 거잖아요. ‘진짜 세상에서의 삶은 폐인인데, IT에서만 풍족하다’ 그러면 그 패러다임은 끝난 거예요. ‘진짜로 건강하게 살고 있나? 진짜 삶이 편해졌나? 그래서 행복하고 즐거운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완성이 되는 거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카카오 공동대표 2년 차를 맞은 조수용은 그가 말했던 당시의 ‘밑그림’을 착실하게 실현하고 있었다. 신대륙을 정비하듯 플랫폼과 콘텐츠 투 트랙으로 디지털시티의 교통정리를 끝냈고, 온라인의 끝에 맞닿은 실제 세상과의 협업도 나날이 늘고 있다.

두 세계의 끝을 경험했던 조수용의 삶이 비로소 화사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조수용을 만났다. 명상과 요가로 단련된 디지털밸리의 리더는 외모도 말투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했다.

-엘리베이터도 직원들과 함께 줄 서서 타더군요.

"네. 저도 김범수 의장도 다 한 줄로 서서 타요."

-보통은 CEO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거나 그 앞에서 직원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는데요.

"전용은 있을 리가 없고요(웃음). 제 방도 얼마 전에 만들었어요. 그전까진 누구나 예약해서 쓰는 회의실을 예약해서 사용했고요."

조수용 스타일은 에센스를 찾아 간결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무인양품의 디자이너 하라켄야가 연상된다./사진=남강호 기자
조수용 스타일은 에센스를 찾아 간결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무인양품의 디자이너 하라켄야가 연상된다./사진=남강호 기자
-여기선 주로 무슨 일을 합니까?

"이야기를 합니다."

-하루종일 어떤 이야기를 하지요?

"경영이라는 건 여럿이 같은 일을 이뤄가는 거예요. 공감이 가장 중요해요. 동료, 파트너들에게 ‘이 일이 맞다'라고 느끼도록 서로를 설득하는 거죠. 어떤 상황을 나와 비슷하게 느끼도록, 시야의 각도가 비슷해지도록... 자발적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정말 많은 대화를 합니다(웃음)."

-‘신뢰, 충돌, 헌신’이라는 카카오의 사훈이 참 좋더군요. 신뢰에 기반해 충분히 논쟁하고 부딪히며 나온 결론에 대해 모두가 한 방향으로 헌신하자는 뜻이라고요.

"네. 그런데 사훈은 아니고 핵심 가치예요. 김범수 의장이 가장 경계하는 게 자율성을 해치는 거예요. 카카오톡 개편도 다 알아서 하라고 맡겨두는데, 문화가 경직되는 조짐이 보이면 바로 뭐라고 하세요. 자율성이 없으면 카카오의 분방한 문화를 지킬 수 없어요."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쓴 대니얼 코일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가 말한 구글과 픽사의 기업 문화가 연상됐습니다. 창의성은 어떤 말이든 나눌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거죠.

"동의해요. 물론 통제가 안 되고 제멋대로인 사람도 있겠죠. 어찌 보면 회사가 수직계통이 확실해야 빨리 전진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헌신도가 높아져요. 100% 동의가 안 돼도 미련이 안 남죠. 저도 제가 반대한 결정에 미련 없이 따릅니다."

-직원들이 카카오를 안전하고 계층이 없다고 느낄 거라고 확신하나요?

"천차만별이겠죠(웃음). 저는 수천 명의 직원, 노조까지 있는 대기업을 경영하고 있어요. 다만 중심은 확실해요. 우리 인재상은 유능하고 열정 있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저는 ‘좋은 친구들’이 안전하고 계층이 없다고 느끼는 게 중요해요. 그걸 전체 직원으로 확장하진 않아요. 우리가 고마워하는 친구들이 우선이지요."

-중요한 포인트네요.

"조직에는 좋은 정책을 악용하는 골칫덩이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량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기준으로 정책을 펼쳐요. 스스로 룰을 정하는 자율 근무제도 그렇게 나왔고요."

카카오 직원들은 근무 시간표를 직접 짠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한 달 동안 160시간만 일하면 된다. 오늘 12시간 근무하고, 내일 1시간만 일해도 된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다. 개인의 자율이 극대화된 시스템이다. 만약 고의로 자율시스템을 악용하면? 해고에 가까운 중징계가 기다린다.

-선량한 직원과 골칫덩이 직원을 어떻게 구분하나요?

"저는 보면 딱 알아요(웃음). 회사의 오너가 누구를 CEO로 선임하는가가 그 기업의 컬처잖아요. 그 컬처가 팀장과 리더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내려오죠. 능력, 열정,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꼼꼼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은 설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미 직감적으로 알죠.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거든요. 그래서 누가 승진하고 누가 회사를 떠나는가가 기업 문화의 전부예요."

-누가 남고 떠나는가가 기업 문화의 전부다…핵심이군요.

"네. 그래서 지금 저와 여민수 대표, 우리 성향에 근접한 사람들이 힘을 내고 있겠지요(웃음)."

-그렇다면 조수용과 여민수는 어떤 성향의 사람들입니까?

"하하. 일단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죠. 네이버 시절, 같이 일을 했으니까요. 여대표는 광고 영업을 하던 분이고 저는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 사실은 둘이 한 편이 되기 힘들어요. 광고에서 돈 벌려는 순간 제품의 모습이 일그러지기 쉽고, 제품을 너무 고고하게 하면 수익이 떨어져요. 어쩔 수 없이 서로 경멸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우린 친했어요(웃음). 저는 그런 사람 중에서 비즈니스적이었고, 여대표는 감각적이었죠. 저희는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카카오의 새로운 캐릭터 니니즈. 세련되기보다는 약간의 ‘병맛'이 있는 정감 있는 친구가 콘셉트다.
카카오의 새로운 캐릭터 니니즈. 세련되기보다는 약간의 ‘병맛'이 있는 정감 있는 친구가 콘셉트다.
-또 어떤 면이 비슷하죠?

"의외로 인간적이에요. 하하. 숫자를 쫓지만 숫자보다 의리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너무 진지하기보다는 재밌는 걸 좋아하죠. 일에 너무 목매달지도 않고요. 가장 비슷한 건 사심이 없다는 거예요."

-사심이 없다?

"의사결정 상황에서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지 않아요. 사심을 빼면 의견을 내는 데 자유롭죠. 계열사가 많은 카카오식 경영에서 어느 한 회사가 ‘나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순간, 공동체엔 균열이 일어나요. 이때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해야죠. 이해관계의 수식에서 가장 먼저 ‘나를 빼면’ 사안은 심플해져요."

카카오 3.0 시대를 연 조수용, 여민수 공동 대표. 카카오는 시기에 맞게 적절하게 공동 대표 체제를 구축해왔다.
카카오 3.0 시대를 연 조수용, 여민수 공동 대표. 카카오는 시기에 맞게 적절하게 공동 대표 체제를 구축해왔다.
-3년 전 카카오 부사장으로 옮기기 직전 인터뷰에서 제게 말했던 카카오의 밑그림이 착착 현실화하고 있더군요. 예컨대 플랫폼과 콘텐츠로 트랙을 나누는 것이나 글로벌로 가겠다는 것이나, 이미 그때 나온 큰 그림이었어요. 마치 CEO가 될 걸 예상이라도 했듯이(웃음).

"절대 아니고요(웃음). 당시에 김범수 의장이 ‘네가 도와줘야겠다'고 했을 때, 이미 밖에서 했던 생각이었어요. 저는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브랜드적인 생각의 정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컨설팅을 맡겨도 최우선으로 듣는 게 기업의 정체성이잖아요."

-카카오의 정체성은 무엇이지요?

"첫째는 오리진이고, 둘째는 사회적 임무예요. 최초에 모바일 세상이 열렸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고민이 메신저로 나왔어요. 카카오톡이죠. 그런데 지금은 카카오톡이 전 국민이 쓰는 소통 수단이 되면서 거의 공기업 수준의 미션을 요구받고 있어요(웃음).

예컨대 카카오뱅크처럼, 국가적으로 혁신해줬으면 하는 일상의 바람이 저희 안으로 들어오고 있죠. 그래서 저는 카카오라는 정체성을 원래 있던 사업에서 얼마나 혁신이 일어났는가로 판단해요. 은행이나 택시 호출은 원래 있었던 거지만 그걸 어떻게 바꿨는지. 거기에 혁신의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 지로 카카오라는 이름을 붙이는 거죠."

-비단 은행이나 택시 호출뿐 아니라 사이버 세계에 길들여진 우리가 IT 경험으로 부동산, 제조업 등 이전 세대의 하드웨어 사업을 재해석하면서 폐쇄적인 사업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역동적인 시대의 최전선을 살고 있어요.

"행운이죠. 역사상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카카오는 상속으로 넘어온 대기업이 아니잖아요. 다들 젊고 혁신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지분구조도 탄탄해요. 시장 기반은 메신저지만 자본과 사람과 전 국민의 삶에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뭘 하든 제대로 하자는 사명이 곧 정체성이 되는 거죠."

그는 인간과 기업의 성선설을 믿는다. 건강하며 스타일리시한 기업이 돈을 번다는 생각이 확고하다./사진=남강호 기자
그는 인간과 기업의 성선설을 믿는다. 건강하며 스타일리시한 기업이 돈을 번다는 생각이 확고하다./사진=남강호 기자
-모델이 있습니까?

"없어요. 사실상 시장에서 이런 모델이 불가능해요(웃음)."

-왜죠?

"플랫폼 사업은 유통업이에요. 무엇이든 다 품어야 해요. 반면 콘텐츠 사업은 그 콘텐츠를 어디든 거침없이 내보내야죠. 한 회사가 두 가지를 같이 하면 사실상 충돌이 생겨요. 넷플릭스도 플랫폼 기반이지만, 자기가 만든 콘텐츠는 독점해서 다른 데 안 줘요. 내가 나를 가두는 거죠. 저희도 음악 플랫폼이 경쟁력이 있는데, 우리가 만든 아이유 음원을 외부에도 공급해야 하나? 이런 딜레마에 부딪히죠.

그런데 저희는 과감히 분리해서 가기로 했어요. 경쟁사에도 저희 콘텐츠를 풀고 경쟁사의 콘텐츠도 품는 거죠. 콘텐츠 전략은 카카오페이지, 카카오M, 카카오게임즈로 짜고 플랫폼 전략은 (주)카카오, 멜론, 카카오페이지도 포함해서 투 트랙으로 가요. 논리적으로는 안 맞아요. 하지만 이렇게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글로벌에 문제가 생겨요. 콘텐츠는 국경을 넘어야 해요."

-크고 작은 인수합병도 많습니다. 기준이 있나요?

"굵직한 건 오래전에 ‘다음’, 최근엔 ‘멜론’ 정도예요. 인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회사 안에서 에너지가 큰 기업을 스핀 오프해서 키운 후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이죠."

-배우 이병헌 씨 소속사인 BH 엔터테인먼트, 숲 엔터테인먼트 등도 카카오가 인수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돈이 많아서 사들인 게 아니에요. 흩어진 엔터 크리에이터들을 모으는 역할을 한 것뿐이죠. 작은 나라에서 각자 플레이하지 말고 모여서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었어요. 카카오M의 주식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함께 스크럼을 짠 거죠."

-기존의 수직구조 방식의 인수합병과는 매우 다르네요.

"머리로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분이 실천하지 못했던 걸 저희는 해요(웃음). 무모하다 싶은 일도 과감하고 빠르게. 창업자가 맨몸으로 시작했고, 사심이 없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조수용이 카카오로 들어오기 전 운영했던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회사 JOH도 카카오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자회사로 들어왔다. 비슷한 방식의 지분 공유였다.

-큰 회사를 운영하면서 바뀐 생각이 있습니까?

"더 철이 든 것 같아요. 한때 무서울 것 없이 펄떡펄떡 뛰던 때가 있었어요. ‘왜 사람들이 이걸 안 하지?’ 의아해하면서요. 에너지가 엄청났고 거침이 없었고 설치고 다녔고 욕도 먹었죠. 그래서 지금 저 같은 친구를 만나는 데 시간을 쏟아요(웃음). 그런데 또 그때의 나와 지금이 나를 두고 선택하라면 전 지금의 제가 좋아요."

-충분한 자원이 확보되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부정할 순 없죠. 하지만 그만큼 걸림돌도 많고 책임도 무겁습니다."

-당신의 힘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엔진은 무엇인가요?

"제가 인정하는 사람이 저를 믿어줄 때, 계산이 없어져요. 두려움은 사라지고 불필요하게 머리 쓰지 않고, 오직 맞는 것만 생각해요. 네이버 시절엔 제일 중요한 사람이 이해진 의장이었어요. 당시에도 디자인하던 미술 전공자에게 마케팅 전략 임원을 맡기는 건 파격이었어요. 그런데 이해진 의장이 믿어준 거죠.

그때 썼던 순수한 힘의 느낌이 있어요. 그 힘의 여운으로 나와서 제 사업을 한 거죠.

JOH를 경영할 때도 내가 인정하는 동료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큰 기쁨이 없었어요.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B’도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동료가 "최고다!" 해주면 그게 최고의 보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에게도 일을 시작할 때 너무 재지 말고 일단 해보라고 해요. 젊을 때 힘을 못 쓰면 영원히 못써요. 한 번이라도 힘을 썼던 경험이 있으면 또 꿈을 꿀 수 있어요."

조수용에게 브랜드는 곧 정리와 빼기를 의미한다. 고수일수록 무엇을 남기느냐로 캐릭터를 드러낸다./사진=남강호 기자
조수용에게 브랜드는 곧 정리와 빼기를 의미한다. 고수일수록 무엇을 남기느냐로 캐릭터를 드러낸다./사진=남강호 기자
공인이 되는 두려움이 컸던 조수용이 카카오의 CEO를 맡게 된 것도 김범수 의장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인정하는 김범수 의장이 저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힘을 내서 잘하고 싶어요(웃음)."

-지금 젊은이들에겐 40대 후반의 리더 조수용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제가 30대일 때는 제 나이 또래의 40대 후반 아저씨들을 보면 말이 안 통했어요(웃음). 인터넷은 할 줄 아나? 내 말은 알아듣나?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두렵죠. 할아버지들이 종종 ‘다 알아' 종종 그러시는데, 그런 모습을 경계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억지로 젊은이들과 어울리려고도 안 해요(웃음). 나 스스로가 사실 30대 초반 시절과 다름없이 살고 있거든요. 다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죠. 무엇보다 카카오 CEO를 하는 동안은 세대 차이를 떠나 ‘내가 유저가 되는 게’ 핵심이에요."

-과거엔 잘나가는 디자이너, 브랜드 건축가,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핫한 스타 CEO… 왜 당신이 하면 다 주목받고 잘 풀리는 걸까요?

"저는 일을 할 때 사명감을 가장 앞에 세우는데, 그걸 비즈니스로 잘 풀었던 것 같아요. 과거 프리챌에서 일할 때도 디자인 파트장이면 그냥 예쁘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저는 회사가 돈 버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물이 인터넷 홈페이지 최초의 배너 광고예요. 전 세계 어떤 포털에도 그런 광고 형태가 없었어요(웃음).

중요한 건 매번 그런 파격적인 저의 제안을 조직의 최고 경영자가 받아줬어요. "오버하지 말라"고 누르지 않고 "이 친구가 말한 걸 의사결정에 반영하겠다"는 거죠. 생각이 트인 CEO들이 혁신을 만들어요. 네이버 초록 검색창이나 네스트호텔, D타워 설계도 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들이고요."

-실패 경험은 없나요?

"많아요. 매거진B도 수익이 좋지 않았지만, 버텨낸 힘이 크고요. 가방도 좋아해서 만들었는데, 잘 안 돼서 접었어요(웃음)."

-당신이 늘 말해왔던 ‘조수용 키워드’가 있어요. 장난기, 똘끼, 모험, 버티기… 이 키워드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뭐지요?

"일단 남의 시선이 안 중요해요. 나 스스로의 시각으로 나를 자각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나를 객관화하는 힘은 명상에서 와요."

리더로서 자신의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거라던 그는, 정작 카카오의 대표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사진=남강호 기자
리더로서 자신의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거라던 그는, 정작 카카오의 대표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사진=남강호 기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유발 하라리가 생각나는군요(웃음).

"하하.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는 명상 챕터가 따로 나옵니다. 나를 가볍게 두면 뇌의 주변이 말끔해져요. 다른 사람이 비난한다고 영향받지 않고 나답게 판단할 수 있달까요. 수시로 나를 수술대에 올려놓는 거죠. 요가도 마찬가지예요. 맨몸으로 내 피지컬을 극한대로 몰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대하는 거예요. 명상과 요가로 정신과 육체를 객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난기, 똘끼, 버티기 정신이 생겨요."

-문득 ‘수련’으로 유명한 종교학자 배철현의 말이 떠오릅니다. 새벽에 앉아서 ‘오늘 무엇을 안 할까?’를 명상하면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명료해진다고요. 가만 보면 매사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아니에요. 저를 모르는 분은 무섭다고 하지만, 오래 본 분들은 "알고 보니 허술한 놈이었어"라고 해요. 완전무결한 사람은 매력 없잖아요(웃음). 프로다운 친절함과 아마추어 같은 허술함, 이 두 가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봐요."

‘알고 보니 허술한 놈이었다'는 말에 친밀감이 들었다. 조수용은 올해 3월, 가수 박지윤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매거진B’ 팟캐스트 현장에서 만나 친분을 맺었다. 내가 그 만남이 매우 지적이라고 말하자, 그는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더는 뉴스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했다. 두 사람은 취향이 잘 맞고 지금도 서로 잘 도와주며 잘살고 있다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매월 한 개씩 브랜드를 소개하는 광고 없는 월간지 ‘매거진B’. B는 브랜드와 밸런스의 약자다.
매월 한 개씩 브랜드를 소개하는 광고 없는 월간지 ‘매거진B’. B는 브랜드와 밸런스의 약자다.
매거진B의 발행인으로 세계적인 성공 기업을 탐구한 경험은 그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깨달음은 의외로 간단했다. 건강한 자본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그게 진짜 돈이 된다는 것. 경영주도 직원들도 소비자도 함께 행복한 기업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 그런 신념으로 JOH를 경영하면서 건강한 현미 밥집 ‘일호식', 동네 개발 사업인 ‘사운즈'를 성공시켰다.

-선한 기업에 대한 생각은 여전한가요?

"더 깊어졌죠. 그런데 카카오가 대기업으로 분류되면서 사람들은 시장에서 삼성, LG, 네이버와 대등한 규모로 생각하세요(웃음). 사실상 체구 차이가 많이 나요. 거인과 꼬맹이죠. 아무래도 저희는 비즈니스보다 사회적인 역할에 치중했던 시기가 길었고, 지금은 밸런스를 맞추려고 해요. 우선은 시장에서 건강하게 살아남아야죠(웃음)."

-하라 켄야, 정구호처럼 당신도 브랜드를 이야기할 땐 ‘뺄 것'을 주장했습니다. 더하기보다 빼기, 늘어놓기보다 정리하기, 채우기보다 비우기라는 반전의 통찰은 왜 항상 유능한 크리에이터의 몫일까요?

"오랫동안 고객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거죠. 여러 개의 공을 던지면 받지 못한다는 걸. 물리적 세상의 논리로 보면 돈을 많이 주면 양이 많아야 해요.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세상은 달라요. 돈을 많이 줄수록 복잡한 걸 간결하게 만들어줘요.

당연한 듯 보이지만 희소성이 큰 작업이에요. 특히 빼는 건 굉장한 용기에요. 일단 돈을 댄 사람들이 안 좋아해요. 흰 티셔츠에 점 하나 찍고 디자인했다 그러면 당황해요. 보도자료를 예로 들어봐도 그래요. 많이 내야 노동량이 보이잖아요. 하지만 때로는 보도자료를 안 내는 것도 전략이에요. 분량을 ‘컷’하는 것도 대단한 주인의식이에요(웃음)."

“생각을 곧게 세우면 부족한 게 많아도 그 사람은 잘살아요. 그게 바로 밸런스죠.”/사진=남강호 기자
“생각을 곧게 세우면 부족한 게 많아도 그 사람은 잘살아요. 그게 바로 밸런스죠.”/사진=남강호 기자
조수용은 예전에도 주인의식에 관한 생경한 정의로 나를 놀라게 했다. 진짜 주인의식은 나를 내려놓는 거라고. "일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어떤 일을 안 하기로 결정하거나 열심히 했는데 빠지게 될 때 나의 이익을 빼고 조직의 방향을 앞세우는 사람이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이죠."

일에 나의 감각은 더하지만, 일에서 나의 이익은 빼는 사람. 조수용은 브랜드를 세우는 일도 같은 비유로 설명하곤 했다. 중심을 잡고 군더더기를 빼는 일, 불필요한 걸 빼면 남다른 캐릭터가 생긴다.

-빼기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요?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좋았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때 덜 머뭇거리는 편이에요. 스스로 비겁해지는 걸 못 참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그는 유년기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성장기 내내 가난했다. 결핍이 낳은 건 우울이 아닌 자율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년에 딱 한 번 옷을 사주셨다. 시험 보기 전날, 잘 보라고. 어머니는 모든 결정 권한을 어린 조수용에게 일임했다. 소년은 시장을 샅샅이 돌며 모든 제품을 다 비교한 후, 마지막 순간에 다 빼고 한 벌을 골랐다.

어머니는 딱 한 마디만 하셨다. "그 옷의 어떤 점이 제일 좋으니? 후회하지 않겠니?"

그게 큰 훈련이 돼서 당시 영등포 옷가게 브랜드를 다 외우고 로고까지 그릴 정도였다. 그때부터 브랜드를 보는 직관이 생겼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책 한 권 허투루 사는 법이 없었다. 수많은 물건 중 최고로 좋은 하나를 골라내는 구체적인 안목, 습관의 힘이 자리 잡았다.

-생각할수록 어머니께서 남다르신 분입니다.

"그렇죠. 제 유년 이야기의 중심 테마도 가난이 아니라 어머니예요. 어머니의 겸손함이죠. 가난해서 1년에 한 벌 밖에 새 옷을 못 사면 보통 현명한 판단은 어른이 해요. ‘아이는 분명 이상한 걸 고를 테니, 부모가 구슬려서 필요한 걸 사줘야지.’ 그런데 어머니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셨어요. ‘1년에 한 번이니 네가 원하는 걸 사라.’ 그리고 제가 그런 결정을 하는 데 같이 시간을 쓰고 결과물을 인정해 주셨어요.

그 경험이 제게 다른 자아를 만들어줬죠. "네가 결정해. 네가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신뢰받은 경험은 대단한 힘을 발휘해요. 선한 마음, 자기 신뢰,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솟구치죠. 말씀드렸듯이 저는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 성장했어요. 대기업의 리더가 된 지금은, 그 신뢰와 자율의 경험을 나누려는 거고요."

-트라우마는 없습니까?

"없어요. 제로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움켜쥐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잃을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네가 결정해. 네가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신뢰받은 경험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 조수용./사진=남강호 기자
“네가 결정해. 네가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신뢰받은 경험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 조수용./사진=남강호 기자
-마지막으로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요?

"제 아이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아빠는 평생 가치를 만들고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가치를 만드는 건 한정된 금을 캐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에요. 세상에 없던 좋은 광물을 합성해내는 일이죠. 전에 없던 모바일이 세상에 드러난 것처럼, 앞으로도 인간 행복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찬 기운이 들 정도로 텅 빈 사무실 안쪽으로 가을 아침 햇살이 비쳐들었다. 민머리에 안경을 끼고 새하얀 면티를 입은 모습이 매끈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문득 반팔 소매 끝에 삐죽이 나온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정사면체의 선과 점을 기호화한 그래픽이었다. 공중에 올라선 한 개의 ‘점’이 브랜드 철학이라고 했다.

"브랜드에 철학이 더해지면 소비자들은 물건이 쓸모없고 못생겨도 사요. 그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이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생각을 곧게 세우면 부족한 게 많아도 그 사람은 잘 살아요. 그게 바로 밸런스죠."

늘 사물과 생각의 에센스를 찾아 간결하게 중심을 세우는 조수용. 살면서 혹 잊을까 하여 제 몸에 검은 문양으로 새겨넣었다고 했다. 지구가 매트릭스 세상이 되지 않으려면 진짜가 존재하고 버텨줘야 한다. 그 중심의 한 점에 조수용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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