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비법으로 탑 찍어부린 '젓갈 王' 이어라

입력 2019.10.04 03:01

[그곳의 맛] [16] 신안 새우젓

서해 청정해역에서 잡은 젓새우, 배에서 바로 천일염으로 절여
오래돼도 식감 유지, 맛은 깊어져
작년 신안서 전국 새우젓 70% 생산… 어가 187곳 740억 매상 올려

신안새우젓 사진
"김치에는 탱글탱글한 신안새우젓을 넣어야 맛이 지대로 난당께." 지난달 25일 전남 신안군 지도읍 신안젓갈타운에서 젓갈을 팔던 나경숙(56)씨는 신안새우젓 예찬론을 펼쳤다. 광주에서 5년 전 귀촌한 나씨는 "다른 지역 새우젓은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흐물흐물 뭉개져부러. 근디 신안새우젓은 모양이 그대로인 데다 맛이 더 깊어지제"라고 말했다.

신안은 '젓갈의 왕' 새우젓의 본향(本鄕)이자 최대 주산지다. 지난해 기준 국내 새우젓 생산량 70%에 해당하는 250㎏ 용량 드럼통 4만3262개가 신안수협을 거쳐 전국으로 판매됐다. 187개 어가가 74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신안수협과 가까운 목포수협에 위판된 물량까지 합치면 신안새우젓 생산량은 전국의 90%에 달했다. 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강경, 광천 등도 주로 신안새우젓을 가져다가 숙성시켜 판매한다고 한다. 국내 새우잡이배의 경우 신안 어선이 250여 척으로 90%를 점유하고 있다.

껍질과 속살이 연한 젓새우(참새우)는 어획한 지 3시간쯤 지나면 신선도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신안 어민들은 근해 청정 해역에서 어획 직후 배 위에서 전통 방식으로 젓새우를 곧바로 새우젓으로 가공한다. 바닷물을 바람과 햇볕만으로 증발시켜 만든 '자연의 선물' 갯벌 천일염으로 절여 저장하는 게 핵심이다. 매일 또는 2~3일 간격으로 선상(船上) 새우젓을 뭍의 위판장(委販場)으로 운반한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온 '1000년 신안새우젓'의 비법이다. 조성룡 신안군수협 판매과장은 "새우젓은 깔끔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대표적인 젓갈"이라며 "반찬용으로도 좋고, 음식의 감칠맛을 내려고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27일 국내 최대 새우젓 위판장인 전남 신안군 지도읍 송도위판장에 젓새우를 잡아 가공한 가을새우젓(추젓)이 250㎏ 드럼통에 담겨 줄지어 있다. 김장철을 앞두고 추젓 수요가 늘면서 이날 추젓 250㎏ 평균 경매가는 200만원 선을 기록했다. /김영근 기자

국내 최대 젓새우 생산지인 신안 지도읍의 신안젓갈타운은 초가을 김장철을 앞두고 '추젓(가을새우젓)'이 한창 팔리고 있었다. 신안젓갈타운에는 새우·황석어·밴댕이·갈치·멸치젓 등 다양한 젓갈이 모여 있다. 젓갈 저장·숙성용 저온 저장시설(978㎡)과 전시·홍보관(1078㎡)도 갖췄다.

신안새우젓이 1000년 넘게 고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은 뛰어난 어장 환경과 천일염이다. 신안군 전역의 해저는 북서풍으로 유입된 모래층이 잘 형성돼 있어 젓새우를 비롯한 어류의 산란에 유리하다. 옹기종기 섬들이 흩어진 신안 해역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이면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청정 해역으로서 우수한 생태 환경이 검증된 것이다. 해상에서 바로 젓새우를 천일염으로 염장해 새우젓으로 만드는 신안 젓배는 신안 갯벌 천일염을 필수로 싣고 다닌다. 수입품에 비해 칼슘과 마그네슘이 3배 많은 신안천일염과 젓새우가 만나 '발효 젓갈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신안새우젓이 탄생했다.

지난 7월 12일 지도 위판장에선 역대 경매 최고가를 깬 신안새우젓이 나왔다. 250㎏ 새우젓 드럼통 1개가 1650만원이었다. 2014년 600만원 하던 것이 최근 어획량이 줄면서 5년 만에 3배쯤으로 급등했다. 주인공은 산란 직전인 음력 6월에 잡는 새우젓인 육젓이었다. 새우젓은 음력으로 잡는 시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가령 음력 5월은 오젓, 6월은 육젓 하는 식이다. 양력으로 보면 봄젓은 4~6월, 오젓은 6~7월, 육젓은 7월, 추젓은 9~11월 등으로 시기가 구분된다.

예부터 "새우젓은 한국 사람이 흰밥을 목구멍에 넘기게 해주는 최소 단위의 반찬"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판서를 지낸 김안국(1478~1543)은 친구의 재물 집착을 탓하며 '밥 한 숟가락에 새우젓 한 마리만 얹으면 먹고살 수 있는데'라고 편지를 썼다. 산촌에 새우젓 장수가 들르면 부잣집 사랑에 기거하게 할 정도로 새우젓을 귀하게 여겼다. 오래된 새우젓 음식 문화 덕에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새우 잡는 무동력선(멍텅구리배) 1척이 주민 100명의 생계를 책임졌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정부의 폐선(廢船) 조치로 멍텅구리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도에서 가까운 임자도 전장포에는 1970년대 만든 길이 100m짜리 젓갈 숙성용 토굴 4기가 남아 있다. 권육용(68) 임자도 전장포어촌계장은 "멍텅구리배가 모두 사라지면서 어민들이 섬을 빠져나가 임자도에서 지도로 새우젓 중심지가 옮겨갔다"고 말했다. 임자도는 내년 9월 다리로 육지와 연결된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신안새우젓의 상징 섬인 임자도의 토굴을 고쳐 새우젓 홍보·체험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