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소아 거대결장은 소화기 대장(大腸)이 움직이지 않는 선천성 질병이다. 대장에 신경세포가 없는 채로 태어나 대장이 연동 운동을 못한다. 대변이 대장을 거쳐 항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니, 대장에 변과 가스가 계속 찬다. 대장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소아 질병 처치와 수술을 전공으로 하는 소아외과 전문의들이 맡아야 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최근 한 대학병원에서 선천성 거대결장 신생아를 잘못 처치했다. 어설픈 수술이 이뤄져 소장과 대장 상당 부분이 손상됐다. 소화기를 통한 음식 흡수가 어렵게 돼 링거를 통한 정맥영양제로 생명을 이어간다. 이런 사달이 벌어진 데는 그 병원에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었던 탓이 크다.

소아외과 전문의는 외과 의사가 된 후 1~2년 더 소아 분야만 전공해서 자격을 얻는 세부 전문의이다. 현재 활동하는 소아외과 전문의는 전국적으로 48명으로 32개 병원에만 있다. 충남, 전남, 경북, 강원, 세종시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들이 연간 3만7000여건의 소아외과 수술을 맡고 있다. 그러니 남아 있는 의사들이 지쳐가고 있다. 그걸 현장서 본 젊은 의사들은 소아외과를 더 기피한다. 지원자가 일 년에 한두 명밖에 없다. 고갈의 악순환이다.

요즘 병원에선 중증 처치가 많고, 응급 수술 잦고, 의료 분쟁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분야에는 의료진의 씨가 마르고 있다. 외상(外傷), 장기 이식, 간·췌장암 외과 등이 해당한다. 모두 생명과 직결된 분야다. 남아 있는 '12척의 의사들'만 녹아나는 형국이다. 야간 당직이 잦은 이식외과는 이혼외과라는 자조가 나온다.

현재 신생아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는 20명 안팎이다.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도 5곳 정도만 남았다. 올해 초 신규 흉부외과 전문의 23명 중 이 분야를 택한 이는 단 2명에 그쳤다. 여기도 남아 있는 의사들만 녹아난다. 산부인과 의사는 한 해 110여명이 나오는데 약 90%가 여성이다. 이들은 대개 가정과 육아로 야간 분만 당직을 꺼려한다. 그러니 현재 수도권 일대 야간 분만은 남성 비율이 높은 60대 남성 산부인과 의사들이 맡고 있다. 이들도 힘에 부쳐한다. 밤 시간 분만을 맡아줄 의사가 없으니, 낮 시간 제왕절개가 많아질 것이라는 '희한한' 우려가 나온다.

지원 기피 진료과 안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일어난다. 외과를 했어도 개업을 할 수 있는 유방외과나 대장항문외과에 쏠리고, 산부인과는 고위험 임부 분만 대신 부인과 질환·성형에 몰린다. 마취통증의학과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다루는 중환자의학보다는 개업이 잘되는 통증클리닉을 택한다.

지난 10여년간 누적된 의료 인력 왜곡 배출과 이른바 문케어로 벌어진 대형 병원 환자 쏠림으로 이제 필수 의료 분야 의사들의 '번 아웃(burn out·탈진)' 현상은 극에 달했다. 당직 근무를 서는 전공의들은 법으로 주당 80시간 이내 근무를 보장받고 있다. 그러니 교수들이 낮에 수술도 하고, 외래도 보고, 밤에는 응급 수술을 한다. 그러고는 다음 날 정상 출근을 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전문의를 따고 나서 세부 분야를 더 전공하는 전임의를 펠로(fellow)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주당 80시간 근무에 해당되지 않는다. 주·야간 웬만한 일들이 펠로에게 몰리면서 그들은 '펠노예'로 불린다.

흔히들 의료계에서 환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환자 제일주의'를 내세운다. 고객이 왕이듯, 환자가 첫 번째 돌봄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 맞는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질병이 잘 낫고 환자가 안전하게 치료받는 환경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의료진이 피곤에 절어 있고, 집중력이 바닥나 있다면 누가 위험해지는가. 그래서 미국에서 나온 개념이 '환자는 두 번째다'(patients come second). 우선 의료진을 충분히 확보하고, 몰입도를 최적으로 유지할 의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 전문가가 보기에 문케어로 환자가 몰려 시장통이 된 현재의 대형 병원이 가장 불안해 보인다. 재래시장 살리기 위해 대형 마트를 강제로 한 달에 두 번 문 닫게 하듯이, 의료진과 환자 보호를 위해 대형 병원을 평일 두 번 쉬게 해야 한다. 이 터무니없는 주장이 황당하게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지금은 환자가 두 번째다. 그래야 환자가 첫 번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