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를 때려잡았다. 그 가죽은 어떤 화살로도 뚫을 수 없었기에, 그는 먼저 몽둥이로 사자를 때려눕히고 맨손으로 목을 졸랐다. 그렇게 잡은 사자 가죽을 움켜쥔 헤라클레스는 괴력에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얼굴에 늘씬한 팔등신 몸매를 자랑한다. 전형적 그리스 후기 고전 스타일이다.
이 조각은 1790년 로마 교외의 티볼리에 있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빌라 유적에서 발굴됐다. 그리스 문화를 동경했던 하드리아누스는 번잡한 로마를 벗어나 드넓은 농장을 갖춘 전원 별장, 즉 빌라를 짓고 그리스의 고전 조각을 본떠 만든 수많은 대리석 조각에 둘러싸여 살았다. 헤라클레스는 발굴되자마자 이탈리아에 상주하던 영국인 고미술품상(商) 토머스 젱킨스의 손을 거쳐 1792년에 랜즈다운 후작에게 넘어갔다. 이후 이 조각은 무려 150여 년 동안 랜즈다운 후작의 자손에게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며 '랜즈다운 헤라클레스'라고 불렸다. 1951년 제8대 랜즈다운 후작에게서 이를 구입한 사람은 미국의 석유 재벌 J. 폴 게티였다. 고전 미술의 열렬한 수집가였던 게티에게는 초인적 영웅 헤라클레스의 수려한 조각도 중요했지만 이전 주인들, 즉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영국 귀족 랜즈다운 후작의 후광이 더 중요했다. 그즈음 게티는 이미 세계 최고 부자였지만, 미국인인 그에게 없는 딱 하나가 바로 고귀한 신분이었던 것이다.
게티는 오로지 이 조각을 위해 캘리포니아의 말리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로마 황제의 빌라를 그대로 재현한 미술관 ‘게티 빌라’를 지었다. 정작 그는 완공된 건물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랜즈다운 헤라클레스’는 거기에 굳건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