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본산(本山)인 이탈리아에서 안락사를 사실상 용인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25일(현지 시각) "돌이킬 수 없는 병세로 인해 환자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받을 경우, 이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도운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는 사실상 안락사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결정으로 이탈리아 국회에서는 안락사 합법화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결정은 이탈리아 전 국회의원이자 안락사 활동가 마르코 카파토가 2017년 음악 프로듀서 파비아노 안토니아니의 안락사를 도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안토니아니는 2014년 교통사고를 당해 팔다리가 모두 마비되고 시력을 잃는 심각한 장애를 입었다. 안락사를 원한 안토니아니는 카파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카파토는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 취리히로 그를 데리고 갔고, 안토니아니는 그곳에서 2017년 2월 40세의 나이로 안락사했다. 안토니아니는 죽기 전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나는 새장 안에 갇힌 느낌을 받는다"며 "고통 없이 죽는 쪽을 택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카파토는 자신의 행위를 "정의롭지 못한 법에 대한 시민 불복종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당국에 자수했고, 안토니아니의 자살을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탈리아 형법은 타인의 자살을 돕거나 부추긴 이에게 5~12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카파토의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신청했다. 이날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카파토는 무죄 판결을 받을 전망이다. 그는 이번 결정에 대해 "파보(안토니아니)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가톨릭계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탈리아주교회의는 이번 결정에 대해 "불만과 거리감을 느낀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일 자살에 대한 도움이나 안락사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강조했다. 당시 교황은 "우리는 환자의 죽고 싶다는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약을 사용하거나 이를 법제화하려는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