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화성 사건' 시기 '유사사건' 용의 선상에 올랐다
학교·직장·이웃 탐문조사, 대면조사 등 세 차례 조사 받아
6·9차서 추측한 범인 조건 안 맞아 이춘재는 번번이 제외돼
"1986~1994년 유사사건 분석, 법최면 전문가 투입 예정"

첫 사건 발생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56)는 과거 연쇄 살인 사건 시기에 발생한 유사 성폭행 사건 등과 연관돼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춘재가 군대를 제대한 이후부터 ‘청주 처제 성폭행·살인 사건’으로 수감되기 이전까지 일대에서 발생한 유사 사건들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26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춘재가 과거 경찰 조사를 받았던 시점은 △1986년 6차 사건 후 인근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 △1988년 8차 사건 △1990년대 발생한 유사 사건 등 총 세 차례다. 당시 경찰은 이춘재의 주변에서 탐문조사를 벌인 뒤 대면조사까지 진행했지만, 이춘재가 범인임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해 용의 선상에서 제외했다.

조선일보가 지난 20일과 25일 잇따라 보도한 이춘재의 고교 시절 사진(왼쪽). 가운데는 조선일보가 새롭게 입수한 이춘재의 고교 졸업 앨범 사진. 오른쪽은 화성 사건 당시 몽타주다.

◇당시 경찰, "6·9차 사건서 범인 '혈액형 B형'·'발 크기 255'로 추정"
이춘재는 1986년 5월 6차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뒤인 그해 8월,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처음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인근 주민의 제보가 발단이 됐다. 경찰은 이듬해인 1987년 10월 피해자 조사를 비롯해, 이춘재의 학교·직장·이웃 주민 등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이고 대면조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이 없었고, 입증 자료가 없어 수사는 더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이춘재가 두 번째 용의 선상에 오른 것은 1988년 9월에 발생한 8차 사건 이후다. 경찰은 그해 말부터 1989년 4월쯤까지 이전 유사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적 있는 이춘재에 대한 수사가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어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1차 수사 때와 비슷한 이유로 다시 풀려났다. 8차 사건은 이후 1989년 7월 윤모(당시 22세)씨가 진범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이춘재는 1990년대 초 발생한 유사 사건과 관련해 세 번째 수사를 받았다. 다만 경찰은 이 사건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선 특정해 밝히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6차 사건 족적에서 추정한 범인의 발 크기가 이춘재의 것과 불일치하다는 이유로 그를 용의 선상에서 또다시 배제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도.

이춘재는 세 차례 조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 크기와 혈액형 등 경찰이 섣불리 추정한 ‘범인의 조건’ 때문에 번번이 풀려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경찰은 6차 사건이 발생한 태안읍 야산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을 확보했다. 당시 족적 크기는 245㎜였으나, 경찰은 당시 비가 많이 내려 실제 크기보다 축소됐을 것이란 가정 하에 범인의 발 크기를 255㎜로 추정해 수사에 활용했다.

범인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던 것 역시 추후 오랜 시간 진범을 특정하지 못한 걸림돌이 됐다. 경찰은 당시 9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를 토대로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라고 추정했다. 이 사건은 1990년 11월 15일 오후 태안읍 야산 일대에서 발생했다. 당시 피해 여중생 김모(당시 14세)양의 유류물 중 교복 일부에서 용의자의 정액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됐고, 감정 결과 B형이 나왔다.

1차 사건부터 8차 사건까지의 현장 유류물에서도 다양한 혈액형이 검출됐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9차 사건 이전까지는 유류물에서 검출된 특정 혈액형이 용의자의 것이라고 추정할 만한 결정적 근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지막 10차 사건 이후에도 형사들은 과거 용의자들을 재검토했는데,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이란 인식이 확산된 상황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1990년 11월 9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화성군 태안읍 사건현장부근에서 탐문수사하는 경찰.

◇이춘재 5차례 교도소 대면조사…경찰 "유사 사건 분석, 법최면 전문가 투입"
경찰은 과거 수사 기록에서 이춘재가 유사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던 사실을 확인한 만큼, 총 10차례로 알려진 화성연쇄 살인 사건 외에도 유사 사건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다. 이춘재가 군대를 제대한 1986년도부터 1994년 1월 청주 처제 성폭행·살인 사건을 저질러 수감되기까지의 시기 동안 경기 화성·수원·충북 청주권에서 발생한 유사 사건들이 그 대상이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9명을 투입해 이 사건들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목격자에 대해서도 30여 년 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법최면 전문가 2명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경찰은 최근 과거 사건 기록을 살펴보던 중 9차 사건 직전 용의자의 모습을 본 목격자 전모(당시 41세)씨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동안 이 사건의 목격자로 알려진 건 몽타주 작성에 도움을 준 1988년 9월 7일 7차 사건 당시 버스 안내양과 현재 고인이 된 버스 운전기사 강모씨 2명 뿐이었다. 전씨는 3번째 목격자인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이 너무 오래돼 기억들이 많이 훼손됐을 우려가 있다"며 "기억들을 회상해내기 위해 법최면 전문가들을 투입했다"고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5차 사건이 일어난 뒤인 1987년 1월 15일 수원-오산 간 국도변에서 본 화성군 태안읍 일대.

한편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는 전날까지 총 다섯 차례 경찰 대면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현재 이춘재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이춘재가 교도소 내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이 제공하는 정보에 가급적 노출되지 않도록 부산교도소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