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 매일 '나'를 기록하니… 5년만에 아이가 생겼다

조선일보
입력 2019.09.21 03:00 | 수정 2019.09.23 10:46

[아무튼, 주말]
난임치료 대안 '나프로 임신법'

최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나프로 임신센터를 찾은 김경희(33)씨가 딸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김씨는 지난 1월 나프로 임신법으로 딸을 출산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나프로 임신센터를 찾은 김경희(33)씨가 딸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김씨는 지난 1월 나프로 임신법으로 딸을 출산했다. / 여의도 성모병원
경기도 부천에 사는 김경희(33)씨는 지난 1월 결혼한 지 5년 3개월 만에 자연 임신으로 첫딸을 낳았다. 일부러 늦게 낳은 건 아니다. 이전에 다니던 난임 전문 병원에선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통로인 난관 한쪽이 막혔다고 했다. 난자가 나오는 난소 기능도 떨어지니, 시험관 시술이나 인공수정을 하자고 했다. 김씨는 건강 문제와 종교적 이유 등으로 거절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나프로 임신법'이다. 특별한 시술은 없었다. 대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마다 질 분비물을 관찰하고, 자기 전에 이를 기록하라고 했다. 김씨는 "처음엔 과연 이게 의학적 치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 달이 지나자 어떤 문제가 있어 임신이 안 됐는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됐다"고 했다. 4개월 동안 매일 기록하고 나자,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가톨릭에서 피임법으로 처음 등장했던 나프로가 난임 치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나프로는 자연적 임신(natural procreation)을 줄인 말이다. 여성 몸에서는 난자가 발달하면서 이에 따른 질 분비물이 조금씩 나온다. 여성이 스스로 이 분비물 속 점액을 정밀하게 관찰해, 최적 가임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나프로의 핵심이다. 아직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40여 년간 관련 연구를 통해 신뢰성이 검증된 방식이다.

국내 1호 나프로 전담 간호사인 여의도 성모병원 조미진 간호사는 "흔히 배란기를 알기 위해 배란 테스트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점액을 관찰하면 배란 테스트기보다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배란 테스트기는 배란 때 나오는 호르몬 농도만 측정하지만, 점액을 보면 난자 발달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평소엔 0.5㎝ 정도인 점액 길이가 배란기가 되면 2.5㎝ 이상으로 늘어나고, 투명한 색을 띠며 미끈거린다. 이때 부부 관계를 권해서 자연 임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원래 가톨릭에서 피임법으로 썼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인간 생명에 관한 회칙을 정하며, 피임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배란일을 피해서 성관계를 해, 임신 가능성을 낮추는 자연 주기법은 괜찮다고 했다. 이 뜻을 따라 세운 것이 미국 네브래스카주(州) 오마하에 있는 성 바오로 6세 연구소다. 연구소는 산부인과 의사 토머스 힐저스가 개발한 점액 관찰법을 발전시켜 피임법으로 쓸 수 있게 체계화했다.

200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각 국가가 인구 감소 위기에 직면하면서 피임보다 난임 해결이 중요해졌다. 연구소는 점액 관찰법을 거꾸로 활용해 임신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점액 관찰법을 피임법 하나로 배우기 위해 연구소를 찾는다.

국내에는 2016년 1월 난임 해결 목적으로 나프로가 처음 도입됐다. 여의도 성모병원 산부인과 이영 교수와 조미진 간호사가 성 바오로 6세 연구소에서 직접 배워왔다. 국내에서 나프로를 할 수 있는 곳은 여의도 성모병원이 유일하다. 최근까지 120명이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나프로로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 성공률은 약 30%로 시험관 아기 성공률과 비슷하다. 임신에 성공한 여성 중에는 40대 고령자도 있고, 인공수정 실패 경험자도 있다.

처음 나프로를 배울 때는 부부가 함께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점액 관찰은 여성이 하지만, 부부가 함께 원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여성들은 매일 점액 색깔, 상태, 점도, 끈기 등을 각자의 기록지에 기호와 수치로 표기한다. 2.5㎝ 이상 늘어나면 10, 투명하면 K, 미끈거리면 L로 표현하는 식이다. 일을 볼 때마다 관찰은 하지만, 기록은 하루 중 가장 특성이 뚜렷했던 것 하나만 한다. 이를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지고 가 의료진과 상담한다. 김씨는 "볼일을 볼 때마다 점액 특성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휴대폰에 메모하는 게 습관이 됐다"며 "처음엔 번거로웠지만, 나중에는 내 몸을 잘 알 수 있게 돼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의료진은 점액 상태를 보고 가임 가능성이 큰 날을 분석하고, 여성의 건강 상태도 파악한다. 필요에 따라 비타민 B6 등 점액 향상제를 처방하거나, 배란 관련 호르몬제를 투여해 점액의 건강도를 높인다. 최대한 자연적 방식으로 임신을 돕기 때문에 여성 몸에 부작용이 없다. 난임 치료는 비싸다는 편견과 달리 경제적인 것도 장점이다. 기본적 초음파 검사와 약물 처방 외에 교육·상담 비용은 따로 없다. 대학 병원 기본 접수비만 내면 된다.

교육 과정 중 한 번은 심리 상담사와 함께 부부 상담을 받는 시간이 있다. 난임 부부는 임신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를 겪다가 부부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전엔 난임 센터까지 방문하면서도 남편에게서 정말 아이를 갖고 싶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남편이 막연하게 '결혼했으니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상담을 받고 나니 처음으로 남편이 김씨에게 "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조 전담 간호사는 "남성이 무정자증이거나 여성의 나팔관 양쪽이 다 막혀 있어 자연 배란이 어렵다면 나프로가 적합하지 않다"면서도 "난임이라고 해서 무조건 시험관 시술 등으로 달려가지 말고, 최대한 자연적인 노력을 먼저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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